“형제는 수족( 手足)과 같고 부부는 의복과 같다. 의복은 다른 옷으로 바꾸어 입을 수 있어도 수족은 한번 없어지면 다시 붙일 수 없다”. 장자(莊子)가 한 말이다. 형제 사이를 강조한 말이다.
고려 공민왕 때 형제가 길을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워 형과 한덩이씩 나눠 가졌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자 아우는 손에 든 금을 물 속에 던져버렸다. 형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아우가 “금을 줍기 전까지는 형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조금도 변함이 없었으나 금을 나눠 갖고 난 후부터 형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형은 “너의 말이 옳다”며 동생처럼 금을 강에다 던져 버렸다(동국여지승람).
정상영 KCC명예회장이 1월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1936년생인 정 명예회장은 6남1녀의 맏이였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이다.
1933년 18세때 네번째 가출 후 공사장 등짐품을 팔면서 서울생활을 시작한 청년 정주영은 본격적으로 사업에 성공하면서 동생들을 하나 둘 불러모았다. 일본 유학을 한 둘째 정인영은 유창한 영어로 미군 사업을 따내는 데 힘을 보탰다. 셋째 정순영도 자동차 수리공장에서 형을 도왔다. 건설업으로 부를 쌓을 때 막냇동생 상영은 고등학생이었다.
부산 피난시절에는 넷째동생 정세영이 가세했다. 다섯째 동생 정신영은 서울대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1958년 현대건설 계열사로 ‘금강 스레트’가 새로 설립됐다. 국내 최초로 지붕 석면 슬레이트를 선보이면서 급속한 성장세를 이룬 회사이자 후일 막냇동생 정상영이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게 한 마중물이 되었다.
이렇게 계열사가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해 정주영의 다섯 동생이 나눠가졌다. 다섯째 동생 정신영(1931~1962)만은 동아일보 기자로 활약하다 순직했다. 정상영 회장이 떠나고 영(永)자 돌림 현대가(家) ‘창업 1시대’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제 몽(夢)자 돌림 2세대를 넘어 선(宣)자돌림 3세대를 맞았다. 3세대는 무(無)에서 유(有)를 일군 1세대 형제들의 도전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