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형, 가을입니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삶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오늘은 이 가을에 함께하면 좋은 전시회 소식을 전합니다. 울산문화예술회관 전시장에서 펼쳐지는 '한국 극사실 회화 특별전'입니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극사실 회화작품을 만나는 전시회입니다. 늘 하는 질문입니다. "그림을 왜 그릴까?" 이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리워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림은 그리움입니다.# K형, 반구천 암각화에도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선사인들은 바위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들은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예
주세페 페노네, 'Foglie di Pietra',(2017), 대리석(11톤), 청동나무 시공을 넘은 생태적 세계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조각가 주세페 페노네 (Giuseppe Penone, 1947년~ ). '나무'를 매개체로 자연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동시대 미술의 거장이다. 이탈리아 예술가로서 최초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대대적인 개인전을 열고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그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오래 탐구해 왔다. 또한 일찍이 상업화되어 가는 예술에 반기를 들어 값싼 재료로 작업하던 이탈리아 '아르테포베라(ar
공예가 방은비 무거운 바다를 이겨내려 어두운 바닥에서 단단해집니다 암흑 속에서 숨긴 색들이 이토록 환하게 부서져서 빛나는 마음 빛을 만나서 빛이 되려고 안에서 안으로 번지고 우린 껍질이 약해서 가느다란 손마디를 가졌습니다 구부러지는 마디가 없었다면 칠흑에서 빛을 찾을 수 있었을까 잘게 부서진 어둔 슬픔을 이어 붙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바탕엔 빛이 없었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공간을 채우면 찬란한 슬픔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당사마을 느티나무 류윤모한여름 찌는 듯한 폭양을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널따란 느티 그늘은일월의 손길로덕지덕지 기운 흔적 역력하다넝마 조각 같은 그늘을 속속들이 펼치면장삼이사들의 살아온 이야기가슬슬 풀려 나올 것만 같다.갈라 터지고 옹이 지고 문드러진 세월이거친 물살처럼 훑고 지나간 흔적잔인한 시간의 떡메에 맞아불구가 된 형상의 저 비통한 곡절은핍박받고 소외된 자들의응어리진 노래 같은 것자식 몰래 내뱉는 이 땅의 어미들의한숨 같은 모성의, 또는드러내 놓고 크게 한 번 울지도,웃을 수도 없는소금 짐 같은 생애를 묵묵히 감내해온빚진 아비들
덕진 스님태화강 십리대숲덕진인심 따라 절로 절로 흐르는 물티끌 없이 맑고 밝게 살자 하고철 따라서 향기롭게 피는 꽃은바램 없이 곱게 곱게 살자 하고자유 간격 줄지어 선 대나무는사견 없이 곧게 곧게 살자 하네계절마다 싱싱하게 푸른 나무집착 없이 인연 따라 살자 하고삶의 열기 식혀주는 은은한 바람걸림 없이 자유롭게 살자 하고부름 없는 대숲 길을 걷는 사람나날마다 방긋 웃고 살자 하네울산 정토사 주지1992년 시 등단, 2006년 신인상 등단시집 「문 없는 문을 열고」 외
송동작 물을 볶다, 1992, 단채널 비디오, 1분 40초'물을 볶다(炒水· Frying Water)'는 제목처럼 물을 볶는 장면을 1분 40초 동안 보여준다. 달궈진 중국 프라이팬(웍)에 기름을 끓인 다음 물을 붓고 증발할 때까지 국자로 휘저으며 볶는 영상이다. 1992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중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미술 작가 송동(宋冬·Song Dong)의 첫 번째 영상작품이다. 송동은 1990년대 초기부터 당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 도시 환경의 변화, 낭비와 소비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퍼포먼스, 설치,
게리 흄(Gary Hume·1962~ )은 세계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집단 yBa(영 브리티시 아티스트)의 핵심 멤버이며 영국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조명 아래서 유난히 빛을 발한다. 알루미늄 판 위에 고광택 산업용 페인트를 사용해 화면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캔버스에 회화용 안료를 쌓아 마티에르를 만드는 일반적 회화와 결이 다르다. 또한 다른 yBa 작가들이 실험적이고 충격적인 소재와 재료를 사용해 유명세를 탄 것과 달리 그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주제를 편평하게 묘사하는 것으
변검배우 구본진내가 사랑했던 가면가면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가면 안에 어떤 얼굴이 있을까더 이상 궁금하지 않습니다얼굴이 가면인 사람에게안부를 물었습니다- 바람이 차네요- 낯이 있은데 누구시죠?- 그냥 지나가는 바람입니다뒤돌아볼 필요가 없어난 바람의 가면을 쓰고 지나갔습니다사랑했던 얼굴은 중요하지 않고다만, 가면만 사랑했을 뿐입니다 글=이인호·사진=허명
은하수 다리- 노말남 은하수 다리 아랜 은하의 강물이 흐른다 노을빛 소리 없이 사라지면주황 파랑 보라 별 점점이 깜박이며물빛 그림자 강 깊숙이 산란한다 남색 노랑 파랑 색색이 변하는'은하수 다리' 별빛 따라 닮아가는 얼굴유리 바닥 딛고 선 아슴한 연인아별빛 먹고 자란 은하 강 물고기도은비늘 털며 사랑의 밤 갈구한다강물이 강물을 밀어도기다림에 마름한 견우야 직녀야오작교 아니어도 은하수 건너사륵사륵 댓잎 소리 밤을 적시며애타던 사랑을 데워 보아라 너와 나, 우리(하략) △2008년 수필△2009년 시 등단
사랑은 매혹- 변지현 무용가의 작품 '魅(매혹할 매, 도깨비 매)'매(무용가 변지현)이미 우린 홀려서 살아갑니다차에 홀리고 집에 홀리고 다른 이가 홀린 것에 같이 홀려서누군지 잊고 살아갑니다아름다운 것들은 유혹하지 않습니다그저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거꾸로 선 폭포가 자리를 떠나지 않고내려오는 물줄기를 받아내듯 빠진다는 건 점점 깊어지는 것제대로 된 사랑에 빠지면깊어진 나를 보는 것글=이인호 사진=허명
니콜라스 파티, 'Landscape', (2021), Soft Pastel, 109.2 X 91.4 (cm) '파스텔의 마법사'! 세계적인 미술가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 1980년~ )를 부르는 말이다. 그는 왕년에 그래피티 작가, 3D 애니메이터로 활동했으며 실험적인 재료로 입체와 회화 등 다양한 작업을 하던 스위스 태생의 젊은 미술가다. 그런 그가 수년 전 풍경, 정물, 인물초상 등의 전통적인 소재와 가장 기초적이지만 의외로 까다로운 표현재료인 파스텔로 세계 화단에 어필했다. 그리고 소재에 대한 개성적인
금을 타는 섬, 슬도남연희울산방어진 대왕암 휘휘 돌아성끝 아기자기 벽화마을해맑은 양손 꽃받침손님맞이 호객 요량비스듬히 요염한 이름표 단 SULDO귀신고래 혹등고래 밍크고래 품은반구대 암각화새천년 등대 어부 길잡이로 환생한 곳살랑살랑 간질간질 슬도 바람구멍 뚫는 조개 화석움푹움푹 빗나간 과녁 없는 크고 작은 달굿대질쉼 없는 석공조개 정밀 타공술수천 년 세월 꿰맨 은밀한 약속파도는 포말 대신우우옹 우우옹 금을 타며 연주 시작긁힌 생채기 조각나 부서진 마음 쓸어 담아멀리멀리 실어 보내라고온몸에 귀를 단 내게춤추라 속삭이는
# K형, 인류 문명사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한 두 사나이를 소개합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점이라는 인류의 특권을 포기하게 만든 지동설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창조론에 반기를 들고 진화론으로 신의 영역을 침범한 찰스 다윈. 이들이 시 공간을 뛰어넘어 이프(if)와 일루션(illusion)이 존재하는 마법의 무대에서 만났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프는 만약, 일루션은 환상이라는 의미입니다. 공연예술 특히, 무대공연은 이프와 일루션의 전제가 없다면 막이 오르지 못할 것입니다. 420년의 세월이 흐른 햄릿이 오늘의 시각으로 표현
애니 모리스, 'Stack8 Ultramarine'애니 모리스(Annie Morris, 1978~ )는 영국 태생의 세계적인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다. 주로 자신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회화, 드로잉 및 조각뿐 아니라 환상적인 태피스트리까지, 다양한 장르로 작업한다. 그녀는 지난 10년 사이에 'Stacks'라는 일련의 토템 스타일 거대한 조각 작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했다. 절묘하게 집적된 유기적 형태의 컬러풀한 돌탑 형상들이다. 현재 특이한 철학적 도상의 평면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 배우자 이드리스 칸( Idris Khan
알도 탐벨리니,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원주민이다(2020)허정선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사알도 탐벨리니(Aldo Tambellini, 1930-2020)는 뉴욕에서 태어나 1960년대에 뉴욕, 쾰른 등을 주 무대로 활동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작가이다. 그는 백남준과 함께 전자매체와 예술의 결합을 최초로 시도한 실험예술 선구자로, 후일 전자융합예술가(electro intermedia artist)로 불리게 된다. 탐벨리니의 유작으로 발표된 (2
내드름 연희단의 국악인 이영미사랑이라는 배경빛이 될까요 어둠이 될까요 다 환하면 빛 밖에 없고 다 어두우면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두우면 아래에서 빛을 비춰주고 당신이 환하면 뒤에서 어두운 배경이 되고 애 써 넘긴 귀밑머리처럼 단정한 명암이 되는 순간 밝고 어두운 긴 시간 속에서 사랑이 우리의 배경이 되면 좋겠어요 글=이인호 사진=허명
빛내림, 저물지 않을 남미숙 우시산국 양쪽 날개를 타고왔을까황하보다 인더스보다더 크고 우람한 태화강 아침 햇살을 접고오색등으로 내려앉은 밤물속 불장난이 한창이다누가 누구를 부여잡았나속살거리며 지나는 바람은가슴 부푼 삶 하나 내려놓는다 손 흔드는 억새에게서때론 체념을 배우고물굽이마다 어리는 빛으로 시작을 배운다 대숲에 이는 소리 하늘을 찌른다 낮을 살아낸 저녁이 여인처럼 다가오고태화강 빛내림은저물지 않을 밝음이다 2016년 신인상시집 「바람의 의자」
No Woman, No Cry 1998 Chris Ofili born 1968 Purchased 영국 화가 크리스 오필리 (Christopher Ofili 1968년~ )는 코끼리 배설물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해 미술계를 놀라게 한 동시대 대표 화가이다. 영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나이지리아 혈통인 그는 백인 문화 속의 편견과 특권 등에 저항하는 콘셉트로 아프리카의 정서가 짙게 밴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재료인 코끼리 배설물은 아프리카에서 음식을 만들 때 쓰는 연료 겸 상처를 치료하는 약재이다. 이는 '영
# K형, 오늘은 1494년 조선 성종 24년에 편찬한 '악학궤범'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악학궤범'은 12율의 결정(決定)과 여러 제향에 쓰이는 악조(樂調)에서부터 악기의 진설(陳設), 정재춤의 진퇴(進退), 악기에 이르기까지 음악 연주에 필요한 사항들을 빠짐없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의 저자인 대제학 성현의 음악에 관한 철학입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하겠습니다. "사람이 음악을 모르면 우울하고 폐색(閉塞)되어 무엇으로도 그 기운을 펼 수가 없을 것이고, 나라에 하루 동안이라도 음악이 없다면 침체하고
파도김현철비 오시면주전 바닷가늘봄횟집으로 오세요갯바위에는비소리 파도소리빠져 죽고 싶은 노래가철썩입니다.바다는 무섭지 않으나못다한 말들이 남았다고죽으러 갔다가 돌아오는파도를 보며기다리다 들킨 마음소주잔에 숨겨 두고넘어지고 깨어지며돌아오는 파도에빈 어깨를 내어 주고함께 넘어집니다주전 바닷가늘봄횟집으로 오시면바다를 보고 앉지 마세요빠져 죽고 싶은 노래에그대도 영락없이철썩이게 됩니다2004년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