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이병근 십리대숲 속속들이 부는소슬바람에 정분이 싸여해지는 줄 몰랐네관어대로 언뜻 튀어 오르다가사라진 물고기는시커먼 강물 깊이 숨어들고삼호로 넘어가는 해거름사위는 어느새 컴컴해지고물닭들도 제집에 드는데정처 없는 내 가슴에는시름만 고이는구나약력이병근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원문학상 본상 수상. 시집 『사랑아 별이 되어』 『늙은 여인의 언덕』 『그리운 나라』 『살살이 꽃』 등
(299)제만자 시인 육필원고아직 곁에 두고 있어사십 년 묵은 재봉틀 아직 곁에 두고 있어 떠밀려 왔다지만 그때는 그랬다고 세월이 얹은 당부를 계산 없이 받아 왔다한 삼 년씩 여남은 번을 충분히 사는 동안언 밭에 무처럼 구멍이 나 앓던 일도그 당부 잊고 살아서 지그재근지 모르겠다풀리면 다시 잇고 안 풀려도 무릅써야 할 알고 보니 길이란 다 하나로 연결되어장황히 말할 수 없는 증표라서 둬본다●재봉틀과 가스레인지 위 찻주전자. 윗실과 밑실이 만나 기찻길이 놓이는 밤 내내 증기기관차는 설원을 향해 달려나간다. 어느덧 정거장에 다다르게 되
떨림에 기대본다- 위드오케스트라당신의 기울기는 어두운 밤쌀쌀한 시간을 버텨요짚어낸 온기로 당신이 돌아오길 바랍니다 힘줄이었나요 핏줄이었나요온 몸을 떨며낮게 깔리는 울림가는 마디로 멀리서 떨고 있는 지금은 당신이 돌아올 때 오고 있나요 물으면 슬프게 웃어줄 것 같은 기대고 싶은 마음을 기대하는 당신의 밤 사진=허명·글=이인호
제임스 터렐 / 'Aten Reign'/ 2013 / 일광 및 LED 조명 /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 설치빛과 공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 1945~ , 미국)은 동시대의 '위대한 화가 50인' 반열에 드는 설치미술의 대가이다. 그의 창작 수단은 모두 '빛' 그 자체이며 빛이 인간의 발상과 사고를 전환시킨다는 철학으로 독특한 미술 영역을 구축했다. 그는 물리학, 안과학 등 빛에 관한 모든 학문을 섭렵하여 다른 재료의 사용 없이 빛과 시각만으로 작품을 형상화하는 작업에 몰두해 왔으며, 그
박종해 시인태화루는 울산의 자존심이다울산의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여기에 생겨나서훤칠한 모습을 드러낸다밝은 달을 품속에 품은 은월봉은연하에 잠겨 있고백 리 푸른 대숲을 끼고 감돌아 흐르는태화강은 질펀하게 너울지며여기에 아서 더욱 푸른 빛을 더한다용금소는 감람빛 물결로 용솟음쳐서용은 까마득히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고태화루의 용마루는 벽공에 깔려 있다그림 같은 청산을 몸속에 감추고흰 갈매기 무등 태우는 태화가람도도히 흘러 바다의 품으로 들어가듯숨 가쁘게 달려 온 빛나는 울산의 역사는여기로부터 웅혼하게 번져나간다 (하략)1980년
# K형, 오늘은 조선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 이야기를 전합니다. 중종 말년에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하서 김인후 선생이 한양을 떠났습니다. 젊은 시절 성균관에서 함께 학문을 닦았던 벗이자 동지였던 하서의 낙향은 퇴계도 한양을 떠나는 계기가 됐습니다. 퇴계는 을사사화 후 병약함을 구실로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고 1546년 고향인 낙동강 상류 토계에서 산운야학(山雲野鶴)을 벗 삼아 독서에 전념하는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토계를 퇴계(退溪)라 개칭하고, 자신의 아호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조선 조정에서는 자주
수보드 굽타/'Mind shut down'/2008/ 스테인리스 스틸, 놋그릇 등/240 x 150 x 205 cm 인도 태생의 화가이자 조각가, 설치미술가인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1964~ )'는 놋그릇, 스테인리스 식기, 양동이와 같은 흔하고 일상적인 물건들로 구축한 대형 야외 조각으로 명성을 얻고 세계적인 '아트 스타'의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이다. 자국에서도 그의 실험적인 조형 방식들은 회화 중심이던 인도 현대미술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신성하다"는 가치관으로, 급속
와엘 샤키(1971~ )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미국과 이집트를 오가며 작업 활동을 하는 작가이다. 중동 지역의 역사와 신화에 관한 연구를 기반으로 기존의 역사적 서술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작가는 중동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울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은 특히 그의 중동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점을 보다 명확히 드러낸 작품이다. 이 작업은 과거 이집트 남부의 도시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마을을 방문한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
탄주어(呑舟魚)-장생포 이야기박장희아버지 바다에 고기잡이 가셨다돌아오지 않는다전날 배 점검도 꼼꼼히 하셨고출항한 날 바람도 잔잔했다배가 오갔을 항로를 다 뒤져도아버지와 배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아버지가 지금껏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배를 삼킨다는 탄주어 때문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탄주어 뱃속에서 처음 눈 뜨면 칠흑의 염료를 풀어 놓은 듯 깜깜해 비명도 질러 보시겠지 탄주어가 헤엄을 치면 풍랑을 만난 듯 몸도 휘청거리시겠지 하지만 손자와 만들기 놀이하던 문방구에서 산 호주머니 속 칼과 가위로 손
데이비드 알트메즈/ 'Untitled' /34.3x27.3x24.1cm / 크리스탈 / 2019 데이비드 알트메즈(David Altmejd, 1974~ ) 는 거대한 인체 조각으로 유명한 캐나다 태생의 예술가이다. 그는 현재 순수미술과 생명공학, 공상과학 및 영화 분야를 접목한 작업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에 초대받는 동시대 대표 작가이다. 그의 작업은 인간 형태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마음, 생각, 영혼과 물질세계를 연결하는 초현실적인 채널로 평가받는다. 거대하고 기괴
울산시립무용단아늑하거나 아련하거나- 울산시립무용단의 리베르 탱고 고요의 리듬을 따라우리가 함께 멈춘 시간사랑이 멈추면찾아오는 건 이별이 아니라더 사랑하지 못한 아쉬움너와 몸 부딪혀 춤추지 못하고빠지는 것이 두려워 놓친 박자처럼 생각나는 선선한 밤과 잠 못 든 새벽붉게 타오르던 시간 지나잠든 그대 조용한 숨결손등을 가만히 대면 우린 같이 살아 있구나아늑해지던 그날의 새벽 사진 =허명 ·글=이인호
박순례박순례사진 속 고래의 눈눈까풀 다섯 개눈가를 맴도는 물 주름저 자리 세월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수장고쌍까풀 눈두덩 위 실선, 깊게 파인 도랑깊이 팬 개천 긴 삼각주가 자리 잡고눈가에 주름은 부챗살처럼 펼쳐지고애교살 그 아래자식궁이라 부는 곳불룩하다어디선가 새끼고래 잘 먹고 잘 산다는 증거눈 주위에 흰 구름 떠 있는 건무언가 깊이 담긴지나간 추억을 곱씹기라도 하는저 눈빛에 빠져 꼼짝달싹 못 하는 나거울 속에 내 눈 닮은2016년 부산여성문학인협회 신인상시집 「침묵이 풍경이 되는 시간」
줄리 머레투 /'Zero Canyon'/Ink and acrylic on canvas/305x214cm/ 2006 줄리 머레투(Julie Mehretu, 1970~ )는 에티오피아 태생의 미국인으로 대규모의 건축적 추상 회화로 유명한 동시대 작가이다. 표현 소재는 주로 21세기의 도시환경이며 작품 속에 기둥, 포티코, 파사드 같은 다양한 건축 구조물과 지도 그리드 등을 추상화하여 시공간이 다른 역사, 지리적 환경을 하나의 화면으로 결합한다. 자신의 작품을 '자기문화인류학'이라고 칭고 작품을 통해 지구와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추억의 악극「갯마을」# K형, 가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거리에 흩날리는 낙엽은 가을이 떠나가는 여정입니다. 가을은 추억이 쌓여갑니다. 낙엽의 시간과 공간 사이에는 추억이 머물러 있습니다. 이 가을에 어울리는 작품이 있습니다. 중 장년 관객에게는 향수를, 젊은 관객에게는 친근함과 감동을 선사하는 악극을 소개합니다.# K형, 악극이라고 말하면 신파극을 생각하겠지요. 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여 과장된 감정으로 울고 웃으며 노래하는 흑백필름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변사가 극을 해설하면서 손수건을 준비하라는 익살스러운 상황을 생각할 것
박산하박산하시인작천정 너럭바위 물결 무늬엔암청색 물의 울음색깔이 짙어진다는 거 가장이 된다는 거옆구리에 물집서고 손바닥 지문이 닳는 일가장자리엔 얇은 얼음이 늘 도사리지먹구름 찢은 햇빛 한 줌 만져보지 못하여영영 건너지 못할 강꽃피면 꽃그늘 찾아 유랑하던 한량이나 산다고 살았지만 빚만 남은 빚쟁이나짙푸른 그림자나 새겨두는물은 깊을수록 색 짙어지고그래 속으로 물길이나 내는 거지목젖까지 올라온 울음(하략)2014년 신인작품상시집 「고니의 물갈퀴를 빌려 쓰다」 등천강문학상, 함월문학상
김수자 / 'Bottari' / 국산 이불보 사용 / 54 (H) x 57 x 53 inches / 2011 '보따리' 오브제와 '바늘 여인'으로 세계 미술 무대에서 큰 명성을 얻은 김수자(Kim soo-ja, 1957∼)는 파리, 뉴욕, 서울을 기반으로 세계 주요 미술관과 국제 비엔날레를 통해 우리 고유의 조형적 세계관을 확산시킨 동시대 대표 작가이다. 바느질에서 초집중 에너지를 감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김수자의 초기 '꿰매기' 회화는 그녀 작품의 대명사가 된 보따리 오브제로 변주되었고, 이 '꿰매기'와 '보
양아치는 2000년대 초반 웹 기반의 작업을 시작으로 미디어의 가능성과 그 이면의 사회, 문화, 정치적인 영향력을 비판적으로 탐구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이다.는 자율주행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라이다(LiDAR)로 제작된 흑백의 디스토피아적인 도시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정적이던 화면은 빠른 속도로 시점을 바꿔가며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점들이 하나의 시점(視點)이 될 수 있다. 무수히 많은 점들이 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흡사 신의 눈(Vis
동축사박마리 수천 년 세월을 한 몸에 꿰어청동빛 머금고 가부좌한 여인 그 숲이 고요하다그 고요는 단 한 번도 깬 적이 없다단 한 번도 소리 내 웃어 본 적 없고싫어 자리 옮겨 간 적 없이같고 다름이 없는 고운 자태로중심이 푸르지 못한 것들 바로 세운다뜨거운 것 앞에 있을 땐 불길이 식은 쪽에 앉고비틀비틀 함부로 간 발자국 따라가지 말고위독한 시간은 버려지는 중이므로 잘 다스리라고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인 손이 말한다지워 낸 만큼 자라는 풍경 산 아래 안개 지우고스님의 독경 소리 맑은 물로 퍼 올려 나 여기에 있음을 알린다여인의 눈빛에
에드 루샤 / '4월까지 아무 것도 지불하지마세요'/ (2003)/ 캔버스, 아크릴/152.4 x 152.4(cm) 팝 아트는 세계미술사의 큰 흐름 중 하나이다. 현대미술을 대중적인 시선으로 유도한 미국의 '팝 아트'를 이야기할 때, '에드 루샤( Ed Ruscha/Edward Joseph Ruscha IV세 1937년~ )'를 빼놓을 수 없다. '앤디 워홀'이 뉴욕의 팝아트를 대표한다면, '에드 루샤'는 문자와 단어를 회화에 활용한 독특한 스타일로 캘리포니아를 위시한 서부 지역의 팝아트를 이끌었다. 다양한 상업예
문모근시인문모근겨울비 추적거리는 날수십 년 된 조립식 건물처마에서 떨어져 튀어 나가는물방울 본다그 녀석 버스 정거장 옆에 전을 펼치는할매 등에서 통통 뛰어다닌다파란색 마을버스와노란색 시내버스 경적 높아지고장난처럼 떨어지는 빗방울해 빠진 길에서호계장 들여다보고 있다장터 건너편 십자가에도 비는 내리고청십자병원 들어서는 사람들차갑게 언 손 빠르게 비비면서미세먼지 농도 높다는빨간 전광판 무심히 바라본다1992년 「시와 시인」 등단시집 「월요일에는 우체국을 간다」 외 4권2016년 천상병귀천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