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7시 55분께 '로드 탁송' 알바생 600명을 실은 관광버스 14대가 울산 북구 현대차 명촌 출고센터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강은정)
 

"대리기사로 일하면 하루 10만원 남짓 버는데 탁송 아르바이트는 24만원 벌 수 있으니 훨씬 낫지요. 계속 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일 오전 6시 울산 남구 매암동 현대글로비스 공장 내에는 현대차 탁송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사람들 600여 명이 모여있었다. 이들은 경기도 시흥출고센터와 경북 칠곡 출고센터 등으로 구분된 팻말 앞에 먼저 온 순서대로 줄을 서 있었다. 장거리인 경기도는 1번 탁송, 칠곡은 2번 탁송을 해야한다.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2번 왕복하는 칠곡센터 탁송 인기가 높은 편이다. 그래서 지원자들은 장거리로 할지 단거리로 2번 운행할지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일부 지원자들은 줄 선 사람 숫자를 세면서 일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쪽으로 줄을 서기도 했다. 영하의 온도 속에서 사람들은 두꺼운 패딩을 입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오전 7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현대글로비스 측에서 오전 7시에 알바 지원자를 대상으로 번호표를 나눠주는데, 이 번호표를 받아야만 탁송 일을 할 수 있다. 최근 탁송알바는 하루 100~200명이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경쟁률이 치열하다.

고임금 알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모인 600여명은 '일 할 수 있다', '돈 벌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차 있었다. 20대부터 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고, 남녀노소 모두 지원자 틈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대리기사 일을 하고 있다는 이모(49)씨는 "탁송 알바 하려고 오전 6시께부터 줄 섰다. 대리기사로 일하면 10만원 버는데, 칠곡·영남지역 탁송의 경우 2번 왔다 갔다 하면 24만원 벌 수 있다. 동료랑 같이 기다렸는데 오늘은 일을 못하고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울산 남구 매암동 현대글로비스 공장 내에 탁송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지원자들이 긴 줄로 서있다. (사진=독자 제공)
 

#화물연대 파업으로 고임금 로드탁송 알바 경쟁률 치열

이 같은 진풍경은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조합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지난달 24일 총파업 돌입을 계기로 시작됐다. 완성차 4~5대를 전국 출고센터로 옮기는 카캐리어(탁송차량)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탁송이 어려워지자, 현대글로비스가 임시직을 고용하는 형태로 로드 탁송 알바생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울산 현대차 공장에 동원되는 임시직은 매일 600명 가량이다.

이날 가장 먼저 도착한 탁송 알바 지원자는 오전 3시에 왔다고 했다. 오전 5시께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몰려온다고 설명했다. 탁송 알바 초반에는 오전 7시 30분에 와도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점점 입소문을 타면서 지원자가 많아져 오전 5시에 와도 안정권에 들지 못한다고 지원자들은 전했다.

지원자들의 이력도 다양했다. 대리기사는 물론 택시기사들도 있었다. 한 택시기사는 "택시 운행해서 하루 종일 12시간 가량 일해야 15만원 겨우 버는데 탁송 알바는 최대 27만원 벌 수 있다길래 왔다. 운 좋게 일할 수 있어 기쁘다"라고 했다.

현대차 퇴직자라고 밝힌 한 시민은 "운전만 하면 일할 수 있다고 해서 왔다"라며 "같이 퇴직한 동료 3명이랑 함께 왔는데 오늘 일하면 벌써 3일째다. 퇴직하면 일할 곳이 마땅치가 않은데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배정된 탁송 알바는 경기도 400명, 칠곡 200명. 가까운 곳 2번을 왕복하는 칠곡 방면이 경기도에 비해 인기가 많은데 이 줄에 섰던 지원자들은 번호표를 받지 못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번호표 배정이 끝나자 "혹시 일할 수 없겠냐"고 문의하는 사람들도 여럿 목격됐다. 추가 인원을 호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스 탑승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3일 오전 8시 20분께 울산 북구 명촌 출고센터에서 신차 로드탁송이 시작됐다. 임시번호판을 단 신차들이 줄지어 도심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강은정)
 

#오전 5시 30분 줄서도 알바 일 못해...돌아가는 사람만 하루 100여명 ....알바 계속 하고 싶어

4번째 도전에 처음 실패를 맛봤다는 박모(38) 씨는 오전 5시 30분에 친구 2명과 함께 왔다가 선착순 600명에 들지 못해 알바를 못하고 돌아간다며 허탈해했다.

박 씨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일을 못하고 있어서 나흘 전부터 탁송 알바에 참여했다. 하루 일당이 24~27만원대로 높다 보니 너무 괜찮은 아르바이트"라며 "화물연대 파업 때문에 이러한 아르바이트자리가 생겼는데 하루 일하고 24~27만원 벌 수 있는 임시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지원자들이 몰리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박 씨처럼 이날 일을 못하고 돌아간 사람은 100여명 남짓. 이들은 "5일에는 더 빨리 와서 기다려야 할 것 같다"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냐는 기자의 물음에 알바 지원자들은 하나같이 "파업이 지속돼 탁송 알바를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이들은 "탁송 업무는 운전면허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라며 "하루 일당이 24만원이면 미장, 용접 등 특수 기술을 보유한 일용직 일당보다 많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탁송 알바를 계기로 연령 관계없이 일할 수 있는 알바 자리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이런 것이 일자리 창출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일자리를 찾기 힘든 시민들이 현대차 탁송 알바 자리에 몰려들면서 악화된 경제상황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알바생들로 채워진 관광버스 14대는 오전 7시 40분께 남구 매암동 글로비스 공장에서 북구 현대차 명촌 출고센터로 향했다. 이들은 오전 8시 20분께부터 차량 탁송 업무를 시작했다. 명촌 출고센터에는 임시 번호판을 단 새차들이 줄을 지어 도심을 빠져나갔다.

한편 현대차 탁송 업무는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되는 날까지 주 6일(일요일 제외) 운영된다.
강은정 기자 kej@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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