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 작가가 1971년 향파 이주홍 작가의 단편집과 관련해 쓴 편지(서평형식)
오영수 작가가 1971년 향파 이주홍 작가의 단편집<해변>과 관련해 쓴 편지(서평형식)













이 준 화백의 편지는 고향 울산으로 내려간 오영수 선생을 그리워하며 쓴 것으로, 울산 언양에서 집필 활동을 하던 오영수 선생의 모습을 그리며 그림까지 남겼는데 당시 오영수 선생의 상황과 겹쳐 눈길을 끈다.
이 준 화백의 편지는 고향 울산으로 내려간 오영수 선생을 그리워하며 쓴 것으로, 울산 언양에서 집필 활동을 하던 오영수 선생의 모습을 그리며 그림까지 남겼는데 당시 오영수 선생의 상황과 겹쳐 눈길을 끈다.

울산이 낳은 단편소설의 거목인 난계 오영수 선생의 활발했던 문학 활동과 문인들과의 교류를 보여 주는 옛 자료가 공개됐다.

이순욱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는 오영수 작가가 1970년대 향파 이주홍 작가에게 쓴 편지와 남사 이준 화백이 오영수 선생에게 쓴 편지를 발굴, 본지를 통해 소개했다,

향파 이주홍 작가는 1970년대 부산 경남 대표문인으로, 그가 1971년 을유문화사에서 낸 단편집 <해변>과 관련, 오영수 선생이 서평(또는 발문) 형식의 편지를 썼다.

오영수 선생은 "마치 객지 어느 비 오는 선창가에서 강나루의 선술집에서 우연히 고향친지를 만나는 거와도 같은 그런 반가움이요. 고맙다는 것은 선생이 문학에 대한 노익장의 정열에 감사드리고 싶은 그런 고마움"이라며 "선생의 작품에 대해서는 지면도 없거니와 여기에 새삼스리 부연할 필요도 없겠으나 세상 물정과 인생이 희비애환에 투철 못하고는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는 작업이며 문학적 정열과 싱싱한 푸르름이 느껴진다"라고 극찬했다.

특히 이 글이 적힌 원고지에는 '모죽관서옥'이라 인쇄돼 있어, 오영수 선생이 자신의 서실을 '모죽관'이라 부른 것으로 유추된다. 편지 끝 주소에는 선생이 당시 살던 '서울 성북구 쌍문동'이 적혀 있다.

남사 이준 화백은 경남 남해 출신으로, 한국 기하추상미술 선구자이다. 1950년 문총구국대의 일원으로 오영수 선생과 동부전선을 함께 종군한 인연으로 생전에 돈독한 정을 주고받은 사이다. 1953년 펴낸 책'갯마을'의 표지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 준 화백의 편지는 고향 울산으로 내려간 오영수 선생을 그리워하며 쓴 것으로, 울산 언양에서 집필 활동을 하던 오영수 선생의 모습을 그리며 그림을 남겼는데 당시 오영수 선생의 상황과 겹쳐 눈길을 끈다.

이 편지는 <문예중앙> 1978년 겨울호 '캔버스 위에 쓰는 겨울송(노래)'라는 코너에 수록된 것으로, 편지 제목은 '향리로 간 형에게'이다.

편지글에는 "오형은 글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 남다른 감각의 작품이 나오는 줄 알아요. 나도 그림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라고 운을 떼며 "이번 고사도(高士圖)는 여행 중 파리의 몽파르나스 거리에서 로댕의 발자크 상을 보았던 생각과 향리의 산야를 거닐고 있으리라는 오형의 풍모가 중복되어 뇌리를 스쳐갔기에 이렇게 그려보았소"라고 썼다.

'고사도(高士圖)'에는 보름달 아래 피리를 불며 초야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선비를 닮은 오영수 선생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림 끝에는 '무오 만추(戊午 晩秋) 이 준 그림(畵)'이라고 썼다. 오영수 선생은 이 편지를 받기 1년 전인 1977년 고향 울산으로 낙향했다.

이순욱 교수는 "이주홍작가에게 쓴 서평형식의 편지는 오영수 선생이 향파 이주홍, 요산 김정한 작가 등 서울뿐 아니라 부산, 경남의 명망있는 문인들과의 관계를 아우르면서 당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던 작가의 문학적 면모를 담고 있어 의미가 있으며, 이 준 화백의 편지는 친교 관계로 단순한 안부를 묻는 수준이 아닌, 당시 오영수 선생이 처한 상황을 그림으로 담아 문학사적 가치가 높다"라고 평가했다.

오영수 선생의 막내딸 오영아 씨는 "1970년대 초 쌍문동에 살던 시절, 수많은 문인이 집을 들락거리면서 문학적 교류가 많았는데 관련 자료가 많이 소실됐다. 뒤늦게나마 이런 자료를 만날 수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라고 전했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



◆단편집 <해변.1971> 편지(서평형식)

<창작집 해변에 붙여> 전문

이번에 향파 이주홍 선생의 제2호 창작집 <해변>이 뒤늦게나마 나오게 된 것은 선생으로 봐서나 문단적으로 봐서나 뜻깊은 쾌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선생과는 서로 얼굴을 익히기 전부터 적잖이 계발되어 온 필자로서는 여간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필자가 만난다는 것은 마치 객지 어느 비 오는 선창가에서 강나루의 선술집에서 우연히 고향친지를 만나는 거와도 같은 그런 반가움이요. 고맙다는 것은 선생이 문학에 대한 노익장의 정열에 감사드리고 싶은 그런 고마움이다.

선생의 작품에 대해서는 지면도 없거니와 여기에 새삼스리 부연할 필요도 없겠으나 위선 집히는 대로 <해변>이나 <바다의 시>만 보더라도 세상 물정과 인생이 희비 애환에 투철 못하고는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는 작업이다. 그러나 더 존귀한 것은 선생은 늙지 않는다. 늙지 않는다는 것은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의 문학적 정열과 싱싱한 푸르름이다. 이것은 역시 재부 선배인 요산 선생도 마찬가지다. 작품이란 한 인간의 개성의 창조인만큼 그 인간적 바탕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해도 그리 과언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선생은 연륜과 함께 노련하면서도 낡지 않는 싱싱함은 역시 선생의 인간적 풍요에서 오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을유문화사 간

서울 오영수



◆이 준 화백 편지(문예중앙.1978)전문

<향리로 간 형에게>

오영수 형에게

오래전에 오 형께서 향리로 내려갔다기에 이거 선수를 빼앗겼구나 싶었지요.

그간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쓰신다지요.

옛 그림 솜씨 잊지 않았지요.

오형은 글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 남다른 감각의 작품이 나오는 줄 알아요.

나도 그림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이번 <高士圖>는 여행 중 파리의 몽파르나스 거리에서 로댕의 발자크 상을 보았던 생각과 향리의 산야를 거닐고 있으리라는 오형의 풍모가 중복되어 뇌리를 스쳐갔기에 이렇게 그려보았소.

펄쩍 뛰지도 마시고 웃지도 마시오. 이건 내 생각에서니까.

그럼 건강을 비오. 이준 학제

무오 만추 이준 화 (戊午 晩秋 이 준 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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