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영 산악인·기행작가
진희영 산악인·기행작가

 경주 남산의 변방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석산(磨石山·531m)은 일명 맷돌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남쪽으로는 치술령과 인접해 있고, 경주시 내남면 명계리와 외동읍의 제내리, 북토리, 그리고 시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신라시대 외동 지역은 신라6부촌 중 '취산 진지촌(嘴山珍支村)'에 해당하는 곳이다. '취산'의 취(嘴)는'부리, 주둥이'의 뜻을 가진 한자로서, '취산'이라 함은 마치 '새의 부리처럼 뾰족한 산'이라는 뜻을 가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석산 기암괴석 지대는 경주 남산 국립공원의 범주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최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평소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곳이다. 마석산은 바위가 아름다운 산으로, 정상에서 조금 북·서쪽으로 처녀의 젖꼭지처럼 생긴 유두바위, 선바위, 대포바위, 남성의 남근을 닮았다는'남근바위(촛대바위)' 등 수많은 바위가 신비에 가까울 정도로 서로 인접해 있다. 이 가운데 뾰족하게 수직으로 서 있는 바위가 산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한 동쪽 성원봉(420.3m) 암릉 가장 아래쪽에는3개의 뾰족한 바위가 비스듬하게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삼지창 바위'와 독수리 머리를 닮은 독수리바위, 가시개(가위)바위도 있다.

 

# 맷돌산(마석산) 의 유래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산 정상에 있는 바위가 맷돌처럼 생겨 일명 맷돌산, 뺏돌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뺏돌산'은 뼈처럼 삐죽삐죽한 돌이 많은 산, 즉'뼈돌산'이라는 뜻이다. 한자 표기로 표기하면 마석산(磨石山)이 된다. 즉 갈 마(磨), 돌 석(石), 뫼 산(山)으로 맷돌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석산을 이 지역 사람들은 '맷돌산'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또한 외동읍 제내리 방면에서 마석산을 올려다보면 산 정상에 있는 큰 바위가 마치 맷돌의 손잡이처럼 보이고, 산의 형세는 마치 맷돌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유래는, 신라시대 어느 해에 무척 큰 홍수가 나서 서라벌의 강과 들판, 산들이 모두 잠기고 말았는데, 오직 마석산 꼭대기만 잠기지 않고 맷돌만큼만 남았다고 해 맷돌산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백운대 마애불 입상(유형문화재-제206호)

 경북 경주시 내남면 내외로1090-80(명계리) 용문사에 위치한 이 불상은 마석산 백운대의 거대한 바위 면에 광배 형태로 윤곽을 거칠게 파내고, 안쪽에 입상을 새긴 마애불이다. 불상의 높이는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되던 당척으로 환산하면1장6척(약4.8m)에 해당된다.

 불상의 모습은 커다란 얼굴에 머리카락이 없으며, 상투 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두 귀는 길게 늘어져 있고, 무표정한 둥근 얼굴에는 반쯤 뜬 눈, 눈썹에서 이어져 내려온 큰 코, 굳게 다문 입술 등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목에는 굵은 삼도(불상의 목에 가로로 표현된 세 줄기의 주름)가 새겨져 있다. 옷은 양어깨를 덮은 통견을 걸쳤지만 옷주름이 없어 미완성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왼쪽 손목에는 세 가닥 주름이 새겨져 있고, 오른손 손바닥은 정면을 향하며 손가락은 위쪽을 향해 있고, 왼손의 손바닥은 정면을 한 채 손가락은 모두 아래쪽을 향해 있다.

 백운대 바위 전망대에 서면 영남알프스 산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좌측부터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 상운산, 고헌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낙동정맥이 영남권에 진입하는 단석산이 가까이 다가온다.

 

# 간절히 기도하면 들어준다는 영험한 바위

 마석산 정상 동쪽에 위치한 이 바위는 예로부터 영험한 바위였다.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 탑돌이 형태로 바위를100바퀴 돌면 그 기도를 들어주는 바위였다고 한다. 바위 앞에는 야트막한 봉분의 이름 없는 묘(무덤)가1기 있는데, 이 묘의 주인공에 얽힌 슬픈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 마석산 아래 동네에 사는 처녀가 한 총각을 연모하고 있었다. 처녀는 차마 연모하는 총각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맷돌바위를 돌면서 짝사랑하는 그 임과 사랑의 결실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한다. 처녀는 바위를99바퀴 돌고 마지막1바퀴를 돌아100바퀴를 채우려는 순간, 그만 바위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 남근석(대바우)

 유두바위 서·북쪽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로, 건장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듯 위쪽으로 뻗어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옛날 이 바위를 찾아와 불을 밝혀 치성을 드리면 사내아이를 얻는다고 해 아낙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때는 마을 전체60여 호 중 서울대학 출신이 20여호라 자랑하며, 이 마을 남정네들이 기(氣)가 세서 객지에 나가 출세하는 것도 이 남근석의 영향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래서 생긴 말이 '북토(北土)(행정구역상 경주시 외동읍 북토리)에 가서 자식 자랑 말고, 말방 가서 힘 자랑 하지 마라'는 속담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이 지역 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마석산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세속을 벗어나 흉금을 갖지 않으면 산수를 감상할 수 없고, 멋진 풍광을 찾아다닐 튼튼한 팔다리가 없으면 그윽하고 심비한 곳을 구석구석 찾아다닐 수 없으며, 여유로운 시간이 없으면 자기 뜻대로 소요할 수 없다. 가까운 유람은 넓지 않고, 얕은 유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 스스로 자신을 물외(物外)에 두고서 온갖 일을 내던져버린 채 외로이 자기 뜻을 행하지 않는다면, 비록 유람한다 할지라도 유람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여행 작가이자 사상가인 서하객이 지은<서하객유기>를 두고 '반뢰'라는 사람이 쓴 서문이다.

   신록이 점점 짙어가는 계절, 떠오르는 해는 눈부시도록 밝다. 이 좋은 계절, 반뢰가<서하객유기>의 서문에 쓴 글처럼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하루 일정으로 스스로 자신을 물외(物外)에 두고서 온갖 일을 내던져버린 채 유람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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