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질문이 있다.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더 일찍 부여해야 하는가, 아니면 아직 이른가. 18세냐, 16세냐.
그러나 이 논쟁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나이가 아니라 준비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줄 것인가가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우리는 준비시켰는가.
최근 청소년 선거 참여 확대 논의는 종종 정치적 유불리의 계산속에서 해석된다. 특정 연령대의 성향을 가늠하며, 누구에게 더 유리한 선택인지 따지는 시선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출발부터 어긋나 있다. 청소년을 하나의 정치적 변수로 바라보는 순간, 그들의 참여는 권리가 아니라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그때부터 질문은 비틀어진다. “그들이 투표해도 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누구에게 유리한가”로.
이 질문은 공정하지도, 성숙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청소년을 시민으로 대하지 않는 태도다. 청소년은 미래의 유권자가 아니라, 이미 현재의 시민이다. 그들은 이미 사회의 영향을 받고, 현실의 문제를 체감하며 살아간다. 기후, 교육, 일자리, 지역의 변화,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논의의 대상이 아닌, 늘 논쟁의 객체로만 두어왔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정치 앞에서 지나치게 조용하다. 정치를 말하지 않는 것이 중립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미루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정치를 이해하지 못한 채 행사되는 한 표는 쉽게 흔들린다. 감정과 이미지, 단편적인 정보에 기대어 선택할 가능성도 커진다. 특히 디지털 환경 속에서 청소년은 수많은 정보와 자극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정보를 걸러내고 해석하는 기준은 충분히 길러지지 못했다.
반대로, 고민과 토론 속에서 다져진 선택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다른 의견과 부딪히고, 근거를 따져보며, 스스로 결론에 이르는 경험은 한 표의 무게를 스스로 체감하게 만든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권리의 시기가 아니라, 준비의 깊이다.
학교는 더 이상 교과서 속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누가 옳은가를 가르치기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후보의 이름이 아니라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그 책임을 따지는 눈을 키워야 한다. 토론과 모의선거, 정책 비교와 같은 경험은 선택의 기준을 세우는 가장 현실적인 교육이 될 수 있다.
선거관리기관은 단순한 관리의 영역을 넘어 이해를 돕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는 청소년을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로 초대해야 하며,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언론과 공동체 역시 정쟁의 언어가 아니라 이해의 언어로 다가서야 한다.
경험없이 주어진 권리는 가볍다. 그러나 경험속에서 길러진 권리는 무겁다. 그리고 그 무게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나이를 낮출 것인가를 논하기 전에 준비를 높였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청소년의 선거 참여는 허용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책임 있게 다음 세대를 준비시켰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투표는 단지 한 장의 용지에 찍히는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선택하는 힘이며,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강력한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아직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말할 기회부터 주는것이 과연 옳은가.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청소년이 준비되었는가를 묻기 전에, 우리는 그들을 준비시켰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이중희 (사)한국청소년문화진흥협회 총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