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동 장구산에 올랐다. 굽은 소나무가 용트림을 하고 있다. 비스듬히 누웠다가 길게 늘어지고 다시 일어선 모습이 흔히 볼 수 없는 소나무다. 척박한 장소에서 세상의 온갖 풍상을 견뎌낸 흔적이 온몸으로 남아 있다. 벼랑 끝 치마바위 위에서 비바람에 허리는 휘었지만 당당하게 서 있다.
소나무는 세월의 흔적을 새겨놓은 듯 우리의 인간사와 다르지 않다. 어찌 나무라고 아픈 상처가 없었겠는가. 홀로 서 있는 소나무의 청정한 자태가 감탄스럽다. 하늘이 내리는 빗물과 이슬로 목마름을 해결하고 돌덩이가 뿜어내는 습기로 자라 노송이 된 소나무를 보면 나도 몰래 경건한 마음이 들고 가슴이 묵직해진다. 대지에 몸을 세우지 못하고 집채만 한 바위를 뚫고 서 있는 나무가 아버님이 살다 가신 모습 같아 마음이 아리다.
아버님은 가난한 집, 팔 남매 맞이로 태어나 신을 살 돈이 없어 맨발로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고 했다. 학교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이후에는 독학으로 공부를 해서 한자를 비롯해 여러 방면에 두루 박식하셨다. 갖은 고초를 겪어 내면서도 불평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힘들게 살면서 오르막길을 올랐던 사람들에게 디딤목이 돼주고, 때론 버팀목도 돼주었다.
부모님을 모시면서 많은 형제와 자식을 가르치고 결혼을 시켰다. 그 흔한 국내 여행은 물론 외국 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 다른 도시에 사는 맏며느리인 나에게는 수시로 와서 어머님 수발들고 두 집 살림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미안해했고 집안 행사 때마다 애쓴다고 위로해 주셨다.
퇴직하고는 편찮은 어머님 대신 살림을 했다. 소나무처럼 휘어진 다리로 절면서 장을 봐오고 밥을 해 아픈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면 무릎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아팠다. 진통제로 버티다 통증을 견디지 못해 팔십이 넘은 나이에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하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우리는 흔히 어머니를 강하다고 한다. 이율곡 어머니 신사임당, 맹모삼천지교의 맹자 어머니, 한석봉 어머니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어머니들의 힘을 알고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들은 밖에서 당신이 하고 싶은 것 하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은 분도 더러 있었다. 그러기에 대부분 어머니의 희생이 빛나는데 오직 자식과 가정만을 위해 헌신을 한 아버님이 존경스럽다. 오랜 시간 동안 짊어진 삶의 무게로 노송처럼 어깨와 등이 구부러졌다. 손은 마디가 굵어지고 얼굴에는 골 깊은 주름이 졌다. 지난한 시간을 겪은 아버님은 육신이 병으로 말라가도 아내와 자식들 걱정이었고, 눈을 감을 때까지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기를 바랐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아버님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는다.
여름날의 타는듯한 뙤약볕과 겨울날의 매서운 추위를 견뎌온 노송이다. 궁핍한 환경에서 아버님의 억척같은 삶의 애정과 소나무의 인고가 오롯이 전해진다.
굽어짐이 많을수록 할 이야기가 많은 듯 살면서 크게 휘어진 사건도 있었겠지만 작게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휘어지기를 했을 것이다. 아버님의 정수리를 누른 중력으로 자식들이 일어섰고 잘살고 있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길을 묻고, 보듬어 줄 큰 어른이 절실할 때가 있다. 살아생전에는 아버님께 고마운 줄도 몰랐는데 내가 윗사람이 되고 보니 노송 같은 아버님이 그립다. 더불어 사는 것을 좋아했지만 가시는 길은 홀로 가셨다.
이승의 시간은 멈췄지만 풀고 가신 시계는 매일 24시간을 째깍거리며 아무 일이 없다는 듯,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돌아간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바로 부지런한 당신의 일생이었다.
인생길은 누구나 평탄하길 바란다. 하지만 쉽게 살아지지 않고 힘든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앞이 보인다. 나도 아버님처럼 살아 있는 한 아픔을 이겨내고 숱한 휘어짐을 반복할 것이다. 곧게 뻗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살짝 휜 멋진 모습으로 너그럽게 살고 싶다. 이리저리 휘는 모양새가 쌓여서 장관을 이루는 노송처럼. 조정숙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