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공개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참교육>은 선 넘은 학생의 학교 폭력과 교육을 잘못 이해하는 학부모에 의해 인권이 유린당하는 교사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 해결하는 교육부 '교권 보호국'의 활약을 시원하게 그리는 시리즈 드라마다. <참교육>을 보면 현실에서도 '교권 보호국'이 정말 있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갖게 된다.
<참교육>을 본 후 드는 씁쓸함은 다름 아니라 학교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한 주체가 교육부라는 사실이다. 즉 정부인 교육부와 교육 관련 법이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깔고 있다. "당연히 교육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하고, 교사의 인권과 제대로 된 학교 교육으로의 회복을 위해 관련 법을 만들어야지!" 했다가도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파악되는 현실은 드라마 작가와 감독에게 오히려 섭섭한 마음까지 든다. 드라마를 너무 재밌게 만든 감독과 작가에게는 아무 잘못 없지만 다른 상상을 못 하고 이 정도로 드라마를 만든 것에 대한 섭섭함을 갖는 교육자에게도 잘못은 없다. 중앙 행정 중심의 교육 체제가 학생들에게 부과한 엄청난 입시 지옥과 사교육 부담, 교사에게 표준 교육과정 수행과 내신 등급의 공정한 매김이란 엄청난 짐을 지운 건 다름 아닌 교육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알고 있는 팩트를 드라마가 자칫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된다. 등수 매기기 경쟁인 입시, 표준 지식 전달, 그리고 내신 등급 매기기를 교육 체계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교육 질서로 만들어 놓고는 이에 따라 발생한 학교 폭력과 학부모가 과도하게 선을 넘는 문제를 다시 교육부가 나서 해결하겠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하다.
<참교육> 드라마 현실은 실제 상황이다. 하지만 해결하는 교권 보호국의 활약은 상상의 나라 그 자체다. 그런데 드라마의 성공 후에 자칫 교육부가 발 벗고 나서 학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섣부른 사회적 합의에 이르면 이는 문제 해결보다는 또 다른 문제까지 만들어낼 가능성까지 갖는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교육과 학교 문제의 상당 부분의 원인을 제공한 주체는 다름 아닌 교육부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으며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교육에도 표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내신과 수능의 점수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교육의 정의가 이뤄진다고 믿는 것이 정부와 교육부의 교육관이라면 이제 한 번쯤은 한국의 교육 현실을 제대로 살펴볼 때가 됐다. 드라마 <참교육>이 상상하는 교육 문제의 해결 아이디어가 한국 교육 현실의 깊숙한 뿌리까지 미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짙은 아쉬움을 갖게 된다. 표준 교육과정이란 교육 질서가 요구하는 정답을 맞히는 경쟁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은 다시 순위가 높은 대학에 진학한다. 이것을 대한민국 표준 교육이라고 믿으며 다시 대학은 국가 경제 발전의 책무를 담당할 '인재'를 양성한다. 정부는 그런 인재 양성에 최선을 다하는 대학에 인재 양성 교육 지원금을 준다. 모든 것은 교육 관련 법과 정부 정책에 철두철미하게 맞아떨어진다.
<참교육> 드라마는, 표준 교육과정, 공정한 입시 제도, 대학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교육부는 충실한데, 한국 교육이 겪고 있는 심각한 부정의와 폭력은 일부 불량 학생, 선 넘은 학부모, 부도덕한 권력자로부터 비롯됐다고 가정한다. 어느새 올바른 학교는 교육부가 제대로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장소가 된다. 그런데 교육자는 이것이 정답이 아니란 사실을 안다. 어려웠겠지만 교육 문제의 해결 방법을 교육부 외에서 찾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교육부와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AI가 이끄는 디지털 시대의 특징은, 특정 지식이 진리가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를 오해하고 진리로 성역화된 지식으로 나라의 미래 세대를 교육이란 이름으로 인재 양성을 하려 한다. 비판받으면 대안이 없지 않냐는 얄팍한 해결책으로 계속해서 입시 지옥과 표준 교육과정의 통제와 강압적 집행을 정당화한다. 이런 배경에서 교육의 절대 권력을 갖춘 교육부가 더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참교육> 드라마의 성공이 못내 씁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