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 시인·문화평론
이병근 시인·문화평론

 어질고 너그러운 행실로 사람 대하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고 살아가는 한국인은 모두 겸손의 표상이다. 겸손은 자신의 가치를 낮추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능력과 성취를 인정하되 그것이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태도에서 생긴다.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부모, 스승, 친구 등 사회구성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답고 갸륵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성공을 전적으로 제힘으로만 여기는 성품이 막되어 예의도 염치도 모르는 너저분한 ‘외곬’수 들이 있다. 알량한 지식을 내세워 남을 업신여기거나 배신을 일삼는다. 심지어 이런 뇌자(賴子)들은 시건방지고 자가당착에 교만방자하기 일쑤다.

 고대 철학자들은 겸손을 지혜의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겸손이 배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겸손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 태도이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성과를 쉽게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과도한 자기 과시와 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장점만을 보여주려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겸손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겸손은 타인과의 비교보다 자신의 성장에 집중하게 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또한 다양한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갈등을 줄이고 상호 이해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겸손과 의리를 숭상하는 학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늘 예의와 정의를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자연의 질서에서 겸손을 익혀야 한다.

 장마가 시작 됐다. 축축하고 무겁고 후텁지근한 날이 당분간 지속 될 것이다. 이런 때 일수록 지치기 쉬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자연을 벗 삼는 시간을 내어 본다. 이맘때쯤이면 산과 들에 또는 빌딩 숲을 벗어난 외곽 길가에서 쉽게 볼수 있는 신기한 꽃이 있다. 짙은 담홍색으로 부채 살처럼 겸손하게 피어 아래로 다소곳이 바림질로 밝아지는 ‘자귀나무꽃’이 있는데 요란스럽지도 않고 화려 하지 않으면서 우아한 기풍은 이게 바로 ‘꽃’일 것이다.

 비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모습은 더 우아하다. 빗속에 피어나는 꽃향기는 장마빗줄기를 뚫고 번져나갈 정도로 짙어서 꽃송이에 코끝을 가져가 보면 감촉 또한 보드라운 명주실이다.

 자귀나무는 밤이 오면 양쪽으로 마주 난 잎을 서로 맞댄단다. 이를 ‘수면 운동’이라고 하는데 낮에는 햇빛에서 양분을 얻으려고 잎 면적을 최대한 넓혔다가, 밤에는 수분과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잎을 움츠리는 거란다.

 이처럼 잎이 모여 하나가 되는 모습에 자귀나무는 합환수(合歡樹), 합혼수(合婚樹), 야합수(夜合樹) 등 다양한 별명을 갖고 있다. 합환, 합혼, 야합은 그 뜻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함께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신혼집 마당에 자귀나무를 심어 부부 금슬이 좋기를 기원했다.

 소가 잘 먹는다고 소밥나무, 소쌀나무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가을에 달리는 열매가 바람이 불면 여자들의 수다처럼 시끄럽다는 뜻으로 자귀나무를 여설수(女舌樹)라고도 불렀다. 

 자귀나무 꽃은 볼수록 신기한것이 붉은 명주실처럼 가늘게 생긴 게 자귀나무 수꽃의 수술인데. 이 수술이 25개 정도 모여 부채처럼 퍼져 있다. 각각의 끝에는 작은 구슬 같은 것이 보일 듯 말 듯 달려 있다. 암꽃은 수꽃 사이에서 미처 터지지 않은 꽃봉오리처럼 봉긋한 망울들을 맺고 있어 수동의 미로 살아온 한국 여인의 모습이다.

 

 들꽃은 스스로 향기를 자랑하지 않고

 바람이 지나갈 때에만 은은히 웃는다

 그녀 또한 그러하였다

 고운 빛 옷자락 끝에 숨기고 

 맑은 눈빛마저 낮게 내려

 누구보다 빛나면서도

 빛나려 하지 않았다

 높은 나무가 열매를 품으면

 가지가 저절로 고개를 숙이듯

 그녀의 아름다움

 남을 향한 배려에서 피어났고

 그녀의 품격은

 조용한 미소 속에 머물렀다

 세상은 화려함을 먼저 보지만

 오래 기억되는 것은

 자신을 낮추어

 타인을 높일 줄 아는

 그 겸손한 자태였다.

 ‘겸손’전문

 

 오늘은 울고 싶어라/한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설 수 없는 사람아/그대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겸손한 자세는 사랑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낮춤으로서 화합의 갱을 더 하고 온유함을 유지 하려는 배려인 것이다. 억지로 나서거나 과하게 개입하지 않고 기다림, 절제, 받아들임 속에서 아름다운 관계의 가치를 찾아야겠다. ‘애모’의 가사에 ‘수동의 미’, 자귀나무꽃의 ‘겸손’. 오늘은 이런 것에서 ‘나’를 힐링한다. 이병근 시인·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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