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영 산악인·기행작가
진희영 산악인·기행작가

 별천룡골은 경주 남산의 한 봉우리라 할 수 있는 봉수대와 전진봉인 시루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동남쪽으로 흘러드는 골짜기로, 경주 남산의 오지 중에서도 오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교통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발길도 뜸한 곳으로, 백운마을에서 오가리고개(嶺) 방면으로 약 3㎞ 정도 떨어져 있다. 오가리라는 지명은 옛날 세상을 등진 사람들 다섯 가구가 모여 살았다 해 붙여진 이름으로, 이 고개를 넘으면 평동(坪洞)마을이 나오며 통일전이 있는 동남산으로 연결되는 은둔의 길이기도 하다.

 별천룡골은 서남산 천룡사가 있는 와룡골(臥龍谷, 용이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골짜기)과는 달리, 또 다른 형상의 용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골짜기라 해 별천룡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별천룡골이 있는 산을 동산(東山)이라 부르기도 하고, 별천룡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 별천룡골 절터

 별천룡골 절터는 백운마을에서 오가리마을 중간쯤에 있는 오가리폭포에서 50여m 위쪽으로 올라가 개울을 건너면 만나는 남산습지(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산 23-1 일원) 안내표지판 부근이 초입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300m쯤 들어가면 잘 단장된 고창 오씨(高敞吳氏) 무덤이 보인다. 여기서 다시 작은 계곡을 건너 200m쯤 들어가면 길 아래 비탈에 '경주남산 별천룡골 제1사지 탑 부재' 이정표가 보인다.

 제1사지로 추정되는 금당지(金堂址 : 부처님을 모신 사찰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가람 배치상 사찰의 핵심을 이루며 탑과 함께 주요 공간을 구성하는 곳)에는 여러 탑 부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또한, 20여m 아래편 계곡에도 석탑 옥개석들이 널브러져 있고, 돌기둥으로 사용됐던 둥근 난간 석재도 보인다.

 지금은 폐사지로 당시의 모습을 짐작할 뿐이지만, 탑의 부재들만 살펴보더라도 금당(金堂) 터를 중심으로 위아래에 적어도 2기의 삼층석탑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동남산의 양피사 쌍탑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 별천룡골의 탑 역시 위아래로 배치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이곳에도 상당한 규모의 사찰(卍)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별천룡골 절터에 관한 기록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오지 중의 오지라 할 수 있는 이 깊은 골짜기에 과연 왜 이처럼 큰 가람이 세워졌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을 뿐이다.

 

# 마석산(磨石山) 삼층석탑

 마석산 삼층석탑은 마석산 정상에서 서·북방면 5부 능선에 있다. 소위 죽곡(竹谷)이라 불리는 깊은 골짜기의 맨 상류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 또한 별천룡골과 다를 바 없는 한적한 곳으로, 수양(修養)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현재 탑이 있던 자리와 절(卍)이 있었던 위치를 살펴보면, 용장사곡 삼층석탑의 배치처럼 금당터로 추정되는 곳보다 다소 위쪽에 탑이 조성돼 있다. 즉 산지가람(山地伽藍 : 산속에 자리 잡은 전통 사찰을 말함. 자연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산세와 조화를 이루도록 다층적인 축대를 쌓아 건물을 배치하는 한국 전통 건축의 대표적인 형태임.) 형식에서 다소 벗어난 듯, 법당보다 탑(塔)이 높은 곳에 배치됐던 것으로 보인다. 폐사지의 흔적은 탑이 있던 자리보다 10~20m 아래 주변에서 두세 군데 발견된다.

 마석산 삼층석탑을 찾아가려면 백운마을에서 별천룡골이 있는 오가리마을로 진입하기 전, 마석산 금천사라는 팻말과 함께 마석산 삼층석탑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볼 수 있다. 마석산 삼층석탑은 금천사(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115) 경내에서 동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약 300m쯤 가다가, 팻말이 붙어 있는 방향으로 계곡을 건너면 된다. 이후 한적한 산길이 이어지며, 간혹 '문화유적 탐방로'라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금천사에서 대략 1.5㎞ 정도 떨어져 있으며 왕복 1시간 정도 소요된다.

 

# 안내표지판조차 없는 삼층석탑

 일설(一說)에 의하면 이 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1989년경 어떤 독지가가 문화재 당국의 도움 없이 사비를 들여 복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주변 발굴조사를 거쳐 1981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석탑은 단층기단으로, 각형 2단 받침의 장대석 위에 우주(隅柱: 모퉁이 가장자리에 있는 기둥)를 표현한 기단면석(基壇面石)을 올리고, 그 위에 2매로 결구된 기단갑석(基壇甲石)을 놓았다. 단층기단은 사방 엇물림 방식으로 축조했으며, 기단갑석의 부연 일부는 파손됐지만, 상부에는 각형 2단의 탑신 받침을 마련했다.

 또한, 탑신석 가운데 2층과 3층은 새로 제작한 부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2·3층의 지붕돌은 모두 4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으며, 상부에는 각형 2단의 탑신 받침을 갖추고 있다. 낙수면(落水面)은 비교적 완만하며 끝부분이 살짝 반전(反轉 : 끝이 가볍게 위로 들린 형태)돼 있다. 이 탑은 단층기단 석탑이라는 특수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 8세기 중반에서 9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표지판조차 없는 삼층석탑. 경주 남산의 끝자락에 은둔자처럼 묻혀 있어 이름조차 전하지 않는 석탑. 그저 마석산 자락에 있다고 하여 마석산 삼층석탑이라 불리고 있을 뿐이다. 고증 절차 없이 복원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문화재 당국이 실시한 주변 발굴조사 결과와 함께 최소한의 안내표지판이라도 제대로 갖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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