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윤의 테라코타 벽화 보존 문제는 서울 구의동 작품에만 그치지 않는다. 서울 종로4가 우리은행 금융센터 외벽에 남아 있는 테라코타 벽화 ‘평화’ 역시 2년 남짓 가림막 속에 가려진 채 보존 논의가 장기화되고 있다.
종로4가 ‘평화’는 1974년 오윤과 오경환, 윤광주 등이 함께 제작한 전돌 벽화다. 옛 상업은행 동대문 지점, 현재 우리은행 금융센터 외벽에 설치된 작품으로, 광장시장 인근을 오가는 시민들이 오랫동안 마주해온 도심 속 공공미술이다.
작품은 사방 30㎝ 안팎의 테라코타 전돌을 붙여 만든 대형 부조다. 오윤이 20대 후반 경주와 일산에서 전돌 공장을 운영하며 흙을 다뤘던 경험이 바탕이 됐고, 오경환이 디자인에 참여했으며, 문화재 복원과 전돌 제작에 밝았던 윤광주가 전돌 제작과 공급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평화’는 현재 온전하게 공개되지 못하고 있다. 매연과 풍화로 일부 전돌이 떨어지는 박락 현상이 심해지자, 우리은행 측은 보행자 안전 등을 이유로 가림막을 설치했다. 이후 보수·복원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비용과 방식 등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며 작품은 2년 넘게 시민의 시야에서 가려진 상태다.
이 작품은 오윤의 초기 조형 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오윤은 목판화로 널리 알려졌지만, 서울대 조소과 출신으로 젊은 시절 흙과 전돌을 활용한 벽화 작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종로4가 ‘평화’는 그가 민중미술의 대표 판화가로 자리 잡기 전, 건축과 공공미술, 전통 재료의 현대적 가능성을 실험한 대표적 사례다.
이 벽화는 1970년대 초 상업은행 지점들에 조성된 테라코타 부조 작업의 흐름 속에 있다. 당시 상업은행은 삼각지, 구의동, 동대문 지점 등에 전돌 벽화를 의뢰했다. 삼각지 작품은 일찍이 멸실됐고, 구의동 작품은 가벽 뒤에 숨어 있다가 올해 다시 발견됐다. 종로4가 ‘평화’는 오랫동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 역시 훼손과 보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 작품은 한국 공공미술의 초기 장면을 보여준다. 1995년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시행되기 20여 년 전, 은행이라는 대중적 공간에 청년 작가들이 전통 전돌과 현대적 조형 언어를 결합한 대형 작품을 남긴 것이다. 민간 건축물과 예술가의 협업으로 탄생한 공공미술이라는 점에서도 미술사적 의미가 크다.

울산이 이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오윤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 오윤은 울산 출신 단편소설가 난계 오영수의 장남으로, 울산에서는 그동안 오영수 문학과 오윤 미술을 잇는 ‘부자 예술’ 서사를 지역 문화 자산으로 조명해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일회성 전시를 넘어선 지속 가능한 콘텐츠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구의동 벽화나 종로4가 ‘평화’ 가운데 한 작품이라도 울산에 유치하거나, 장기 대여·공공 보관·복원 후 순회전 등의 방식으로 울산과 연결하는 방안도 논의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 과제는 적지 않다. 테라코타 벽화는 벽체에 부착된 대형 작품인 만큼 해체와 이전, 복원, 보관에 전문적 검토가 필요하다. 설치 장소의 구조와 습도, 안전성, 관람 동선은 물론 작품 소유권과 관리 주체, 보존 비용 부담도 함께 조율해야 한다.
그럼에도 공론화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의동 벽화가 철거 시한을 앞두고 보존 움직임에 들어간 가운데, 종로4가 ‘평화’ 역시 가림막 속에서 보존 논의가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 민예총 김교학 이사장은 “오영수문학관, 울산시립미술관 등 울산에는 이미 두 사람을 함께 조명할 공간적 토대가 있다”며 “이제 필요한 것은 울산만의 지속 가능한 콘텐츠화”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