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년을 살고 보니 세상의 모든 ‘정답’들이 늘 의심스럽다. 사는 건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데 답이 그렇게 깔끔하다고? 하지만 그 의심들은 자주 무너졌다.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 쓸데없는 군더더기는 쳐내야 한다는 오컴의 면도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진실이란 건 대개 아주 간결해 보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도 그렇다. 오랜 수렵 채집 생활에서 벗어나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정착 생활을 시작한 것을 신석기 혁명이라고 하며 이를 농업혁명이라고도 부른다. 이후 잉여농산물이 생기면서 도시가 생성되고 종교도 만들어졌다고 우리는 깔끔하게 배워왔다.
이 명확한 인과관계에 의심의 선이 그어진 것은 십여 년 전쯤 ‘괴베클리 테페’가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다. 지금으로부터 1만2,000년 전 농사의 ‘농’자도 알기 전에 대규모 신전 도시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문명 발생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는 일이다. 알 수 없는 부호와 동물 문양으로 가득한 석재 기둥, 제의의 흔적이 분명하게 남은 동물 뼈들, 정교하게 측량된 원형의 신전들 주위로 주거의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인류 문명에서 도시보다 신전이 먼저였으며 농경으로 인해 종교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제의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면서 농경이 발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도 가능하게 한다.
이 거대한 전복 앞에서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세상의 통념, 이른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진실과 확신은 의문과 의심의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다. 지금껏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은 의심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특수교사로 20년을 살아온 나는 교육, 특수교육, 특수교육대상학생들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배워온 게 진짜인 양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를 문제로 보는 건 아닐까.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두 다리로 걷지 못해서, 사회성과 지적 능력에 문제가 있어서, 사회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연약함’과 ‘보호’라는 관점은 애써 숨겼지만 사실은 그런 프레임에 갇혀 아이들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현대의 뇌과학은 뇌의 절반이 잘려 나가거나 감각기관이 태생적으로 없더라도 필요한 정보들을 처리하기 위해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서로를 연결하며 변화한다는 것을 이미 밝혀내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아이들은 장애가 있으니 이런 건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저건 안 되는 거지, 못하는 건 못하는 거다.’라 생각하며 깔끔한 특수교육의 정답지를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영 혼란스럽다.
특수학급에서만 근무하다 처음으로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던 해, 통학버스에서 내린 아이들 하나하나 손 꼭 잡고 교실로 인솔해 가던 모습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아이들까지 안전상의 이유로, 보호와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시선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통제한 것이 정말 아이를 키워내는 일이었을까 고민한다. 제자리에 가만 앉아서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란 일은 과연 정답이었을까. 아이들마다 제각각 다른 감각,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자기 자신을 피워올리고 있었을 텐데 그걸 나는 읽어주고 있었나, 그 꽃을 향해 내민 손길이 오히려 독이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점점 많아진다.
그 혼란의 틈으로 거대한 돌기둥을 세우던 1만2,000년 전의 사냥꾼들이 밀려온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경건한 그들이 괴베클리 테페에서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뜻의 하란고원 거친 흙더미처럼 우리 아이들의 똥똥한 뱃살 아래에도 내가 이때까지 알지 못한 원형 신전과 커다란 우주 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나의 괴베클리 테페, 그 신비의 언덕에서 생생하게 깨어날 아이들을 기다리며 오늘도 조금씩 흙을 털어내 본다. 이은영 울산행복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