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철 울산교총 상임고문·학성고 진로진학부장·본지 독자권익위원
박봉철 울산교총 상임고문·학성고 진로진학부장·본지 독자권익위원

 "선생님, 공부를 하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요."

 진로·진학 상담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학생들은 학원 문턱이 닳도록 오가고, 늦은 밤까지 숙제와 문제집에 파묻혀 살아간다. 그런데도 성적표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학생은 자신감을 잃고, 학부모는 불안과 경제적 부담에 지쳐간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나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하루 중 학원 수업과 숙제 시간을 제외하고, 오롯이 나 혼자 고민하고 공부하는 시간은 몇 시간인가?"

 대부분의 학생은 선뜻 답하지 못한다.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의 힘으로 사고하고 이해하며 체화하는 자기주도학습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는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훌륭한 강의를 듣고 좋은 문제집을 풀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없다면 성적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배움은 결국 ‘듣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에서 완성된다.

 일반적으로 고등학생이 성적을 향상시키고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하루 최소 5시간 이상의 순수 자기주도학습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학생마다 학습 역량과 상황은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사고하고 반복하며 공부하는 시간이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학생은 ‘공부를 하고 있다’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하고, 또 다른 학원으로 이동하는 일상이 반복되지만 정작 스스로 개념을 정리하고 틀린 문제를 분석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은 부족하다. 공부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학원의 시간표가 돼버린 것이다.

 상담 초기에는 학생들에게 학원을 줄이고 자기주도학습 시간을 늘리라고 강하게 권유하곤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사교육 시스템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학원을 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생에게는 불안이었고, 학부모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상담 방식을 바꿨다.

 학원을 당장 그만두라고 강요하는 대신, 자기주도학습 시간이 왜 중요한지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 

 학생 스스로 자신의 공부를 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한계를 깨닫도록 기다렸다. 그리고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변화는 생각보다 더디게 찾아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장 오래 지속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은 하나둘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학원을 줄이고, 자신의 공부 시간을 확보하며, 틀린 문제를 반복해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반가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선생님, 학원을 줄이고 제 공부를 시작했더니 성적이 올랐어요."

 "아이가 처음으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학생의 웃음과 학부모의 감사 인사는 자기주도학습이 단순한 공부 방법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든다.

 교육은 결국 '기다림'의 예술이다.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듯 아이들의 성장 또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어른들의 조급함으로 아이를 떠밀기보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동기를 심어주고, 스스로 변화할 때까지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역할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성장기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 부담과 날로 증가하는 사교육비, 그리고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맞벌이 부모들의 희생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공교육이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 역량을 길러주고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더욱 강화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을 넘어 스스로 배우는 힘을 길러주는 공간이 돼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전해야 할 공부의 진짜 이유는 결코 점수나 대학 간판만이 아니다. 

 공부는 인내를 배우는 과정이며, 실패를 견디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또한 습관과 태도를 단련하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내면의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다.

 지식의 유통기한은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공부를 통해 길러진 자기주도성과 문제 해결력, 그리고 스스로 배우는 힘은 평생을 살아가는 가장 든든한 자산이 된다.

 오늘도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를 만나며 다시 한번 확신한다.  올바른 동기부여와 따뜻한 기다림, 그리고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함께할 때 우리 아이들은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를 것이다. 교육은 성적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봉철 울산교총 상임고문·학성고 진로진학부장·본지 독자권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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