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들이 정재호작 휴식(왼쪽), 박득순작 현대조선소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정재호작 휴식(왼쪽), 박득순작 현대조선소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반세기 전 울산의 공장과 조선소를 그린 대형 회화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970년대 화가들이 산업도시 울산의 성장과 희망을 담았다면, 오늘의 작가들은 산업을 일궈온 사람들의 노동과 삶, 그 이면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울산시립미술관이 5일 제1전시실에서 개막한 기획전 ‘산업의 꿈, 사람의 시간’은 광역시 승격 3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내년 2월 21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공장을 연상시키는 어둑한 공간에 대형 회화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울산의 산업 현장을 담은 1970년대 민족기록화 4점이다. 임직순의 ‘석유화학공업단지’, 박득순의 ‘현대조선소’, 이용환의 ‘삼도물산’, 박항섭의 ‘한양화학공업’으로, 모두 300호 크기다. 울산시립미술관이 작품을 찾아 보존 처리를 거쳐 처음 공개한다.

관람객들이 이우성작 ‘오늘도 우리는 일하러 간다’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이우성작 ‘오늘도 우리는 일하러 간다’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이날 언론공개회에서 미술관 측은 울산 관련 민족기록화 5점 중 4점을 확보했으며, 김숙진의 ‘한국비료’는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작품들은 1979년 근대미술관 건립 계획이 무산된 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 보관돼 있다가 1998년 새마을운동중앙회에 기증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전시에는 현대 작가 6명이 새롭게 제작한 대형 회화 7점도 나란히 걸렸다.

박득순의 ‘현대조선소’에는 붉은 크레인 아래 새 배가 모습을 갖춰 간다. 그 옆 정재호의 ‘휴식’에는 수리를 위해 돌아온 배가 등장한다. 산업화 초기의 기대와 노동 이후 회복의 시간이 서로 마주하는 듯하다.

임직순, 〈석유화학공업단지〉, 1973, 캔버스에 유화, 197 × 290.9 cm, 새마을운동중앙회 소장
임직순, 〈석유화학공업단지〉, 1973, 캔버스에 유화, 197 × 290.9 cm, 새마을운동중앙회 소장
권세진의 ‘도큐먼트’는 얼핏 흑백사진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조선소 건립 협의와 자동차 생산라인의 모습이 한지 위 수많은 먹의 붓질로 되살아난다. 방정아의 ‘살아야 했다 I·II’는 용접 노동과 가사노동을 병행한 여성, 임신 중에도 물질했던 해녀의 구술에서 출발했다.

송주웅, 〈‘청맹(靑盲)과니’의 노래〉, 2026, 캔버스에 혼합재료, 162 × 260 cm, 울산시립미술관 커미션
송주웅, 〈‘청맹(靑盲)과니’의 노래〉, 2026, 캔버스에 혼합재료, 162 × 260 cm, 울산시립미술관 커미션
박경효의 ‘고래와 춤을’에는 몸속에 기계 부품을 품은 고래가 등장한다. 고래 등 뒤로 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이 솟아 있다. 울산 작가 송주웅의 ‘청맹(靑盲)과니의 노래’는 커다란 얼굴과 울산화력 붕괴사고의 잔해를 통해 산업도시의 고통을 드러낸다.

전시장 곳곳에는 현장의 감각을 더하는 장치들이 배치됐다. 약 1,320㎡ 규모의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는 트랙을 따라 걸으면 구겨진 형태로 공중에 걸린 옛 산업사진들이 눈에 들어온다. 양정욱 작가의 로봇팔이 움직이자.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설치작품 ‘철들의 꿈’에서 나는 소리다.

양쪽 벽면에는 노동자와 주민들의 구술이 이어졌다. 선박노동자 박종숙 씨의 “배 안에 칸칸이 파이프도 많고 구석구석 페인트를 칠해야 해요”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선박을 그린 그림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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