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말기 울산지역의 초등 교육은 일제 초기에 비해 학교 수나 취학생 수 등에서 큰 격차를 보였다. 특히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지의 분교장과 간이 학교들이 일제히 독립학교로 승격, 개교함으로써 1면 1교를 훌쩍 넘어섰고 울산군 전체의 학교 수가 해방을 전후해 총 40개교에 이르게 됐다.
당시에는 자녀 교육을 위한 교육열이 점차 높아져 각 지역마다 앞 다퉈 지역의 유지나 독지가에 의한 학교 설립이 줄을 이었다.
일제 말기부터 광복을 맞은 시기를 전후로 해 울산지역에는 일본인 학교를 인수, 개교한 4개교를 비롯해 22개교가 개교함으로써 총 초등학교 수가 44개에 이르렀다.
일제 말의 중등 교육은 중기에 설립된 울산공업보습학교와 울산공립농업학교가 존속돼 학교 현황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학교 명칭, 학교 위치, 수학 연한의 변경 등으로 교과 과정의 운영 면에서 다소 변화가 이뤄졌다.
울산의 교육은 광복 직후에는 지휘 계통의 마비로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울산군내 학교로는 초등이 30개교, 중등이 2개교였으며 일본인 학생이 다니던 울산초등학교, 방어진초등학교, 장생포초등학교, 목도초등학교(춘도초등 전신), 언양초등학교, 서생초등학교 등 6개교는 교원도 학생도 없는 폐교 상태였다. 해방 후 일본인 학교였던 언양과 서생 두 지역 학교는 폐지됐고, 목도는 춘도로 개칭돼 존속되다가 공해로 인한 온산 지역 주민들의 이주로 폐교됐다. 그러나 울산, 방어진, 장생포 3곳의 일본인 학교는 해방 후 재개교해 존속되고 있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과 이에 따른 피해 복구 및 재건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반공교육 또는 반공사상교육, 과학기술교육, 경제부흥교육, 그리고 국민체위 향상에 역점을 둔 보건 교육에 충실하려 했다.
1950년대에도 많은 학교가 설립돼 교육의 기회를 한층 더 넓혀갔다. 이 시기에 설립된 초등학교는 농남(현재의 송정), 염포, 삼호, 두남초등학교 등이었고, 중학교는 울산농업고등학교와 분리된 울산제일중을 필두로 공립으로 울산여중, 두광중, 남창중과 함께 대현학원의 대현중이 설립됐다. 고등학교로는 공립으로 울산여고, 남창고, 언양농고가 설립됐고, 사립으로 창강학원의 울산고가 설립됐다. 이 시기는 초등학교보다 중·고교가 많이 설립된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의 교육행정은 제3대 울산교육구 교육감으로 윤진일 교육감이 재직하던 때에 군사정변이 일어나 1962년 1월 1일 교육자치제가 폐지됨에 따라 울산의 교육행정은 울산군수 산하의 교육과로 편입하게 됐다. 1962년 6월 1일 울산이 시로 승격되고 특정 공업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비료공장, 정유공장 등 석유화학 공업을 필두로 해 산업도시로의 첫걸음이 시작됐고 울주군과도 분리됐다. 1964년 1월 1일 교육자치제가 부활돼 울산시교육청과 울주군교육청으로 재발족되고 교육장제가 도입됐다.

1970년대 울산은 산업화에 따라 인구가 급증했다. 1970년대 15만명이었던 인구는 1979년에는 39만명으로 두 배 이상 훌쩍 뛰었다. 이 같은 인구 팽창으로 학급 수도 큰 폭 증가해 1970년 356학급에서 1977년에는 820학급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1972년 남목초 전하분교가 전하초로 개교했으며 울산중앙초(1972년), 선암초(1974년), 태화초(1975년), 신정초, 울산양정초, 옥성초(이상 1976년)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울주군에서는 1975년 덕신초가 개교해 45개 학급에 약 400명의 학생이 통학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학생 수는 1970년 2만3,000여명에서 1979년 5만6,000여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나 2부제 수업이 불가피하게 됐다. 또한 졸업생 진학률은 1970년 72.9%(전국 66.1%)에서 1980년에는 95.9%(전국 95.8%)로 당시 울산시의 중학교 진학률은 매우 높았다.
중등교육을 보면 공립중학교는 울산시에 울산제일중을 비롯한 5개교와 울주군에 언양중을 비롯한 8개교 등 모두 13개교가 운영됐고, 사립중학교는 울산시에 학성중 외 4개교와 울주군에 상북중 외 2개교 등 8개교가 운영돼 중학교는 모두 21개교였다.
이 시기에 신설된 학교는 범서중(1971년), 울산중앙여자중(1976년), 현대중(1978년), 울산동여중(1979년) 등 4개교다. 고교에는 공립 인문계인 울산중앙여고(1979년)와 사립 인문계의 우석고(1974년)가 신설됐다.
전문계고로는 사립인 현대공고(1978년), 울산경영정보고(1979년) 등 5개교가 신설돼 울산지역의 고교는 모두 14개교가 됐다.

1980년대에는 인구의 증가와 산업화로 울산의 교육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해 교육의 양적 팽창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시의 울산 시내 초등학교 현황을 보면 1980년대에는 학교 수가 27개교였는 데 반해 1989년에는 학교 수가 41개교로 51.9% 늘어났다.
중학교 수도 1970년대 말 9개교였던 것이 1980년대 초 울산중앙중, 화진여중, 울산동중의 설립을 필두로 1989년까지 21개교로 증가했다.
1980년대 초 5개교였던 울산시의 인문계고는 울산중앙고(1980년)의 설립을 시작으로 10년간 현대여고(1981년), 학성여고, 현대고(이상 1983년), 성광여고, 울산성신고, 울산제일고(이상 1987년), 울산제일여고(1988년)의 연이은 설립으로 13개교로 증가했다.
울주군의 인문계고는 1980년대 초 1개교였던 것이 1988년 상북고가 종합고등학교에서 인문계고로 환원되면서 2개교로 늘어났다. 전문계고는 울산시의 경우 1980년대 3개교였던 학교 수가 1984년 울산상업고가 설립돼 4개교가 됐고, 울주군은 1980년대 초 5개였다가 상북고가 인문계고로 전환되면서 4개교로 감소했다.
■1990년대 초·중학생 줄고 고교생 늘어
자녀 감소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1990년대 들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는 학생이 감소하는 대신 학급 수가 늘어나면서 교사당 학생 수가 줄어드는 등 교육 여건이 나아졌다. 다만 고등학교의 경우 저출산의 여파가 미치지 않아 매년 학생이 꾸준히 증가했다.
초등학교 학생 수는 1990년 울산시와 울주군을 합해 10만5,742명에 2,250학급이었으나 1996년에는 9만6,445명에 2,395학급으로 학생수는 9,297명이 줄었지만 학급수는 145학급으로 늘어났다.
중학생은 1990년에는 4만22명이었지만 1995년 5만5,521명으로 급증하며 최고점을 찍었다가 1997년 5만792명, 1999년 4만5,365명이 됐다. 학급 수는 1990년 768학급에서 1997년 1,066학급, 1999년에는 1,019학급이 됐다.
고교생 중 인문계의 경우 1990년 2만1,829명으로 408학급이었지만 1997년 3만51명에 542학급이 됐고, 1999년 3만1,571명에 622학급으로 증가했고, 전문계고는 1990년 1만,520명에 201학급이었다가 1997년에는 1만7562명에 338학급, 1999년 1만8,153명에 367학급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