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의 긴 연휴였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전국이 우울해진 분위기 속에서 쉽게 나들이를 계획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떠오른 곳이 ‘태화루’였다. 오는 14일에 준공을 하지만 연휴를 맞아 임시개장을 한 울산의 새로운 랜드마크 ‘태화루’에 들러 울산의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고 왔다.
◆누각에서 바라보는 태화강, ‘한 폭의 그림’
차는 태화로터리에서 태화교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동강병원 맞은편 제방도로에 주차를 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개양개비꽃이 유혹하는 강변을 따라 걸었다.
살랑거리는 강바람을 맞으며 그 옛날 용이 살았다는 ‘용금소’를 지나 5분만 걸으니 날아갈 듯 한 태화루의 처마가 한눈에 들어왔다.
입구부터 인파로 복잡했다.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많았다. 추모 분위기 속에서 원거리 여행을 감히 단행(?)하지 못한 시민들이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깔끔하고 깨끗하나 영남의 3대 누각인 밀양 영남루나 진주 촉석루보다 아담하고 오밀조밀한 느낌이다. 신발을 벗고 누마루에 들어섰다.

묵서와 대들보의 용그림을 아이들에게 먼저 보여줬다. 아이들은 고개를 들고 용을 찾느라 분주하다. 묵서에는 ‘龍 西紀二千十三年五月三十日重創上樑 龜(용 서기이천십삼년오월삼십일중창상량 구)’란 글귀가 보인다.
글자 그대로 ‘서기 2013년 5월30일에 중창상량을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용(龍)’자는 태화루 아래 ‘용금소’에서 따왔고, 거북 ‘구(龜)’는 장수를 의미한다.
누각에 서서 태화강변의 전망을 본격적으로 감상한다. 저 멀리 황룡연의 서남쪽에서 달그림자가 숨어 비춘다는 은월봉과 그 아래 봄을 감추고 있는 언덕 장춘오, 그리고 장춘오 맞은편에 펼쳐져 있는 대나무 숲, 유영하는 고래모양의 십대대밭교가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마천루 빌딩들도 그림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옛 조상들이 읊은 풍류가 문득 떠오른다.
하늘이 가까워 은하수 그림자가 환한데 봉우리가 높아 달빛이 숨네. 지팡이 짚고 멀리 푸르고 높은 산에 오르니 오솔길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 기울었네… ‘은월봉’ - 정포(鄭脯)의 시

◆그 옛날 시인묵객들의 마음을 머물게 한 곳
태화루는 신라의 고승인 자장이 643년 선덕여왕 때 창건한 태화사의 부속 건물이다.
주변의 수려한 풍광을 바탕으로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던 태화루는 울산의 수령을 포함한 관원과 나그네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전국 시인묵객들의 마음을 머물게 한 ‘풍류의 현장’이었으나 임진왜란을 전후해 아쉽게도 완전히 모습을 감춘다.
우여곡절 끝에 1990년부터 중창 건의가 시작됐고, 2005년에는 건립에 대한 기본계획이 수립돼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2008년에는 건립자문위원회 구성됐으며, 2010년 태화루내 건물과 부지보상을 완료하고 2011년 착공, 오는 14일에 준공하게 됐다. 그러나 태화루는 안타깝게도 형태와 양식을 알 수 있는 글이나 그림이 전무하다.

기둥을 보면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배웠던 배흘림 양식이 떠오르는데, 건립자문위는 태화루가 가장 번성한 시기를 고려 성종 때로 보고 고려시대 배흘림양식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대들보와 서까래에는 붉고 푸른 옷을 입혔고, 태화루 아래 용금소에 용이 살았다는 전설에 따라 용과 울산을 상징하는 학을 그려 넣었다.
처마 가장자리에는 아내를 범한 역신에게 관용을 베풀었다는 ‘처용설화’ 속 처용의 얼굴도 눈에 띈다. 누마루를 받쳐 올리는 장주초석은 총 40개로 비와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로부터 태화루를 보호한다.
전반적으로 조선시대 양식인 촉석루나 영남루와는 달리 대들보 등 곡선이 많고 목재간의 짜임새가 정교해 그 멋이 단청과 어우러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단아함을 느끼게 해준다.

상량문은 건립자문위원인 양명학 전 울산대교수가 글을 지었고, 휘호는 서예대가인 소헌 정도준 선생이 한지에 썼다. 편액은 가로 3m 세로 1.2m 정도의 현판 두 개가 본루 정중앙에 걸렸다.
한 개는 이휴정에 보관하고 있다가 울산박물관에 기증된 한자현판을 확대·모사해 걸었으며, 다른 한 개는 태화시장쪽 즉 본루 후면에 걸렸는데 소헌 정도준 선생이 한글 휘호로 쓰고 나무에 글을 새기는 각자는 환웅 김진희 선생이 제작했다.
한글현판을 제작하게 된 이유는 울산이 외솔 최현배선생의 고향이기 때문이라고. 누마루에서 태화강 공원의 풍광을 한껏 감상하고, 누각 옆 행랑채, 대문채, 사주문 등도 잠시 들른다.

부속시설인 홍보전시실에는 「학성지」(1749)에 실린 태화루 구지(舊地)모습과 문화재 발굴조사 때 나온 기와 등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태화루와 태화강이 맞닿은 쪽으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으며, 이곳은 ‘태화강 100리길’과도 이어져 걷기에 좋다.
조선전기 학자로, 「동문선」을 편찬한 서거정(徐居正)은 「태화루 중신기(重新記)」에서 “그 경치가 내가 전에 본 누대들과 비슷한데, 광원(曠遠)한 것은 오히려 이곳이 나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태화루에 들렀다가 한눈에 반해 집에 돌아가서도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역사와 문화의 고장, 울산. 울산의 새로운 랜드마크, ‘태화루’가 있는 태화강변의 풍광이 새롭게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