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길 주필

‘100세 이상 흡연 가능’…어느 식당의 유머 넘치는 금연 경구다. ‘노인정(老人亭)’의 계급’도 있다. 59세면 신병교육을 받는 훈련병이다. 60세가 되면 훈련을 마치고 이등병 계급장을 단다. 61세면 이등병 1호봉, 69세면 이등병 9호봉이다. 문제는 60세가 되었다고 노인정 입대 지원을 받아주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등병 7호봉(67세) 이상은 돼야 그래도 원서를 낼 수 있다. 

70세가 되면 일병으로 진급한다. 일병 시절에는 라면을 끓일 수 있다. 물론 끓여서 바치기만 한다. 라면을 끓이고  식기를 닦을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아직까지 눈치 안보고 라면을 먹지 못한다. 80세가 되면 상병이다. 상병 8호봉이 그 유명한 미수(米壽)다. 이때는 밥상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려서 정리할 수 있다. 드디어 90세가 되면 병장이 된다. 병장이 되면 졸병이 끓여주는 라면을 누구의 눈치도 볼필요없이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때가 된다.

그러나 90세 병장부터는 고도리판에 끼워주지 않는다. 계산도 제대로 안되고 자주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 무렵 주번하사를 하긴 하는데 끗발이 별로 없다. 마지막으로 100세가 되면 선임하사가 된다. 이때부터는 거의 휠체어를 타고 출퇴근 한다. 문제는 노인정의 부하들을 알아보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그냥 TV나 보면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퇴근한다. 장수시대 노인정 풍경을 병영의 계급으로 패러디 한 유머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정년(停年)을 치사(致仕)라 하여 70세 였다. 신라때 문장가 최치원도 70세 치사를 했다. 평균수명이 20세도 못되었던 때였기에 70 치사한 분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였다. 옛날에는 치사를 하더라도 몇 등급 품수를 낮춘 급료와 종전의 명예를 보장해주는 체아(遞兒)며 노인직, 향직 같은 노후 보장제도가 있었기에 정년을 영예롭게 맞이할 수 있었다.
이같은 노년 자원을 국사에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로과(耆老科)를 신설한 임금이 조선 영조(英祖)였다. 재위 32년(1756년) 예순 셋이었던 영조는 대왕대비 인원왕후 김씨의 칠순 생신날 환갑이 넘은 신하와 종친들을 거느리고 축하한 후 역시 환갑이 넘은 선비들만으로 과거를 실시했다. 보통 장원급제를 하면 6품이 주어졌으나 이때 기로과의 장원 이가우(李嘉遇)에게는 특별히 정3품 첨중추(僉中樞)를 주었다.

나이 많은 비서들과 함께 지내고 싶었던 영조는 일흔 살 때인 재위 39년(1763) 기로와 출신 고몽성(高夢聖)을 특별 승진시켜 승지(비서)로 삼았다. 왕조실록의 사관(史官)은 고몽성에 대해 “늙고 잔약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어 사람들이 많이 비웃었다”며 젊은 엘리트의 시각에서 비판하고 있다. 그래도 영조는 일흔아홉 살때인 재위 48년(1772)에는 정원 6명인 승정원에 기로과 출신만 4명을 배치하고 ‘머리 흰 네 사람의 집’이라는 뜻의 사호각(四皓閣)’이라는 어필 현판까지 내렸다.

영조 48년(1772) 기로과의 문과 급제자가 6명인 데 비해 무과는 무려 626명이 뽑혀 건장한 노익장을 과시했다. 지금 우리사회의 평균 수명이 대폭 늘어났지만 정년은 오히려 짧아지는 모순에 직면해있다. 영조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기로과의 최고령 급제자는 고종 27년(1890)의 정순교(丁洵敎)로 1805년생이니 여든여섯이었다.
19세기 프러시아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유럽에서 최초로 정년과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126년 전인 1889년 정년을 65세로 정한 것이 선례가 되어 영국에서는 1908년에, 미국에서는 1935년 처음 정년제를 도입했다.

비스마르크가 정년을 65세로 정한 데는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당시 독일 남자들의 평균수명은 45세였다. 거기에 20세를 더한 것이 65세다. 그 나이를 넘겨사는 사람들도 극소수였으며, 그 극소수에게 연급을 줘봐야 국가예산에서 새발의 피였다. 평균수명이 연장된 지금 비스마르크의 논리를 적용한다면 정년을 90세 정도는 잡아야 할 판이다.
대한노인회가 현행 65세로 돼있는 노인(老人) 연령기준을 70세 또는 그 이상으로 올리는 문제를 공론화(公論化)하자고 제안했다. 노인 기준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게 되면 65~69세 연령대(2014년 202만명)는 매달 10만~20만원씩 받는 기초연금을 못 받게 되고 각종 할인 혜택에서 제외된다. 

노인층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 ‘70세는 넘어야 노인’이라는 대답이 1994년엔 30%였지만 2014년엔 78%를 넘었다.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로 올린다면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된다 해도 ‘은퇴는 했으나 노후 복지를 못 받는’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난다. OECD 1위라는 노인 빈곤문제가 더 악화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경제적 파장, 사회적 수용 능력, ‘활동적 노후’를 바라는 중·장년층의 욕구 등에 대한 깊은 숙고(熟考)를 거쳐 생산적 논의로 발전시켜 가야 한다. 노인 연령 공론화 제의를 환영하면서 복지조정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70세는 돼야 ‘노인정의 계급’ 일등병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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