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옥길 서예가·광산김씨 종친회장

세종임금은 중국 땅 황제가 두려워서 조선글자를 비밀로 만들어야 했다. 중국 땅 황제 다음으로 두려운 사람이 문과출신 벼슬아치들이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조선글자를 반대하리라고 믿었기에 임금은 혼자서 조선글자를 만들기로 했다. 비밀로 만들어진 조선글자는 세종대왕과 정의공주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서 궁리했던 것이다. 집현전 학사들은 한사람도 조선 글 창작에 참여한 사실이 없다.
 
세종대왕이 중국 황제의 눈을 어둡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말이 되지 않는 ‘正音’이라는 엉터리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세종임금이 이름 짓고 싶었던 것은 조선문자(朝鮮文字)였다. ‘조선문자’라고 이름 짓게 되면 명나라 황제가 노여워하면서 세종을 해롭게 했거나 조선국을 해롭게 했을 것이다. ‘조선문자’라고 했으면 집현전 학자들이 더욱 거센 반발을 했을 것이다. 세종임금은 그들을 이겨낼 길이 없었다. 

세종 25년 계해 12월 섣달 그믐날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을 불려놓고, 임금이 손수 만들었던 조선글자를 발표했던 그 일을 기록한 글이 ‘실록’에 실렸다. 왜 세종임금이 섣달 그믐날을 택했느냐 하면 조선에 체류하고 있는 명나라 사신들이 춘절을 보내기위해 귀국했기 때문이다. 

병인년(1446)에 정인지가 지은 글에서 그것이 밝혀졌다. 정인지가 말했다. ‘계해년 전하겨옵셔 간략한 보기를 들어서 뜻을 붙인 ‘걸게’를 보여 주시고는 그 글자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하셨다’고, 조선글자를 반대한다는 상소를 올렸던 사람은 최만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 일곱 사람이었다. 당시 집현전 학사가 모두 열두 사람인데 일곱 사람이 반대소를 올렸고, 다섯 사람은 찬성소를 올린 것도 아닌, 이른바 ‘은근 반대자’ 였다. ‘은근반대자’ 다섯 사람(최항 박팽년 신숙주 이선노 이개)은 4일전에 조선글자로 중국글자를 번역하라는 명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명령을 받지 않았다고 하면 조선글자 반대소에 합세 했을 것이다. 성삼문이 세종의 명을 받고 중국 땅 요동에 귀양 왔던 중국사람 황찬을 찾아가서 묻기를 하고 돌아와서 조선글자를 만들었다는 등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성삼문은 중원 땅을 밟은 일이 없었다. 이 거짓말은 인조이후였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간행하게 되면 중국사신에게 넘겨져서 황제 손에 들어가기에 책을 간행 할 수가 없었다. 간행하지 말라가 ‘勿刊行’으로 됐던 것이다.

실국시대(失國時代) 경성제국대학 교수 소창진평(小倉進平)은 실록에 실려 있는 훈민정음해례를 책으로 만들면 돈이 되겠다는 판단아래 제자인 이용준(안동 와룡면 주하동, 퇴계 후손)에게 안평대군 서체로 ‘훈민정음해례본’만들고 보니 종이의 지질이 세종 때와 다르고 새 종이라 안동에 내려가 소죽솥에 삶아 누런색이나 옛 티가 났다.

이용준 역시 ‘훈민정음’이 자기 집안의 세전가보가 아니라 처갓집인 광산 김씨 종택 긍구당에서 빌려왔다는 사실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이 위서(僞書)를 간송 전형필에게 거액을 받고 팔아서 좌익 운동을 했다. 팔아서 넘길 때 진평이 전형필에게 지키라는 부탁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라’는 것이었다.

1. 이 책 주인을 나 진평이라고 말하지 말라. 2. 안동 어느 고가에서 나왔다고 하라. 3. 가보를 팔수 없기에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하더라. 4. 세종대왕 하사품으로 받은 것이라고 해라. 5. 폭군연산 시절에 표지와 첫 장을 찢었다고 하라. 6. 복원하면서 <耳>글자를 <矣> 글자로 잘못 적었다고 하라. 7. 표지복원으로 소죽솥에 넣어서 누렇게 만들었다고 하라.

광복이 후 진평은 일본으로 갔다. 전형필이 가지고 있던 진평 편집 위서(僞書) 붓글씨 ‘훈민정음’책을 조선어학회에서 1946년 석판으로 대량 인쇄했다. 그 책이 이른바 ‘소창진평 편집위서 훈민정음’이다. 이 거짓말 책이 국보(國寶)로 등록됐다. 후에 유네스코에도 등록됐다. 정부는 실록에 있는 글로 복원해서 그것을 다시 국보로 삼아야 한다. 

이용준은 그 뒤 북한으로 가서 김일성대학 교수가 되고, 왕조실록을 해석본을 완성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서임을 밝히는 근거는 많이 있으나 지면이 허락치 않아서 유감으로 생각한다.

 1999년 10월 9일 한글날 밤 8시에서 9시까지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 해설자 류인촌이 내린 마지막 말인즉 ‘우리글자인 한글은 집현전 학사들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교과서를 바꾸지 않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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