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때 왜장을 껴안고 경남 진주 남강에 투신한 논개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평양성에서 왜장의 목을 베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계월향에 대해서는 논개 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평양지’의 기록을 보면 평양 점령 왜군의 부장(副將)이 총애한 기생 계월향은 조선 장수 김경서를 오빠로 가장해 평양성으로 불러들인 뒤 왜장을 죽이도록 돕는다. 이후 탈출하면서 왜군의 공격을 받자 김경서는 계월향을 죽이고 홀로 성을 탈출한다. 

공을 세웠으나 억울하게 죽은 계월향은 잊혀지고 김경서는 용감한 장수로 칭송을 받는다. 심지어 ‘임진록’같은 소설엔 김경서와 탈출하던 계월향을 왜군이 죽이자 김경서가 분노해 더 용감하게 싸웠다는 얘기로 윤색된다. 계월향은 300년 뒤 일제때 ‘충렬의 화신’으로 논개와 함께 복권되지만 남북 분단후 다시 잊혀진다. 

올해 중고교에 보급된 43종의 역사교과서(한국사·세계사·동아시아사 등)에서 발생한 수정·보완 사항은 총 1,281건에 달했다. 오류의 내용은 다양했다. 한국사 교과서의 현대사 부분 분석 결과 일부교과서는 집필진이 북한 토지개혁의 한계점은 서술하지 않고 남한 토지제도의 한계에 대해서는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또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또는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해야 한다’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읍 발언(1946년 6월)’을 남북분단의 원인이라고 서술했다. 그전 사실상 북한 정부 역할을 했던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가 1946년 2월 조직됐는데도, 일부 교과서에서는 남북 분단의 원인이 남한에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오류가 없고, 편향성 시비가 적은 교과서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다양한 시각의 역사서술’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당양성과 편향성은 분명히 다르다. 분단의 고초를 겪고 있는 이 나라가 통일된다면 통일이후의 한국역사는 또 어떻게 기록될까. 계월향은 다시 복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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