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지방경찰청 이창현 지능범죄수사대 팀장이 26일 경찰청 프레스센터에서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을 이용해 국가기술자격시험을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른 피의자 74명을 검거했다고 밝히고 있다. 우성만 기자

높은 공신력을 자랑해온 국가기술자격시험이 부정행위로 얼룩졌다. 공무원 신분인 시험장 관리위원이 사설 학원장과 결탁해 시험지를 유출했고, 시험장에서는 SNS 실시간 컨닝이 이뤄졌다.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허술한 관리감독이 도마에 올랐다.

# 감독위원·학원장·온라인카페·수강생까지 연루= 울산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제62회 전기기능장 실기시험에서 이뤄진 부정행위를 적발해 74명(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 등)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3명을 구속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적발된 부정행위는 시험장 관리위원이자 학교 교사인 A(61)씨에게서 시작됐다. A씨는 수험생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시험지를 몰래 복사한 뒤 팩스로 전기학원 원장 B(56)씨에게 유출했다. B씨는 이를 인터넷 카페 운영자 C(46)씨와 또다른 전기학원 원장들에게 전달하면서 울산과 서울을 비롯해 안양, 당진, 대전, 수원, 천안 등 전국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A씨는 최근 4년 동안 전기 관련 시험 관리위원이나 감독위원으로 83차례 참여하면서 또다른 시험지도 유출해 B씨에게 전달한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은 A씨가 대가로 금품을 챙겼을 가능성을 집중 수사했지만, 구체적인 물증은 드러나지 않았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B씨와 밥 한끼 먹은 적도 없다”면서도 “친분이 있어서 준 것뿐”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시험지 유출부터 해답 공유까지 ‘1시간’= A씨의 손에서 B씨를 통해 유출된 시험지는 SNS를 통해 ‘실시간 컨닝’으로 이어졌다.

C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부정행위’에 참여할 수험생을 모집했다. 평소 유료 수강을 하거나 자료집을 구입한 이들이었다. SNS 단체대화방을 개설한 뒤 시험 당일 답안을 공유했다. 수험생 250여명이 참여한 대화방에서 58명이 답안을 베껴 시험을 치렀다.

A씨가 최초 시험지를 유출해 B씨에게 전달하는 데까지는 30~40분. 이를 입수한 C씨가 문제를 풀어 답안을 공유하는 데까지는 7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오전 9시에 시작된 시험 답안이 오전 10시 전에 공개된 것이다.

수험생들이 실기시험을 위해 소지한 개인 노트북도 문제가 됐다. 전기회로도를 작성하는 시험에서 수험생들은 각 프로그램이 설치된 노트북을 갖고 시험을 치러야 한다. 수험생들은 미리 준비한 무선인터넷공유기 등을 시험장에 숨겨 들어갔고, 감독관의 눈을 피해 SNS 화면을 여닫으면서 ‘실시간 컨닝’을 했다. 수험생들은 단체대화방에서 정답을 재차 확인하는 등 대화를 하며 시험을 치르는 대담함도 보였다고 경찰은 밝혔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수사를 의뢰한 이번 사건은 서울의 한 시험장에서 현행범이 붙잡히면서 수면에 떠올랐다. 1,146명이 응시해 전국 14개 지역 23개 시험장에서 닷새간 치러진 시험에서 둘째날 벌어진 일이었다. 이들의 범행은 이틀만에 막을 내렸지만 사실상 ‘SNS 실시간 컨닝’은 다른 학원에서도 관행처럼 퍼져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인력 부족·위원관리 소홀= 경찰이 적발한 사례에는 시험장 감독위원들의 비양심적인 부정행위가 다수 드러났다. 관련 학원을 운영하면서도 규정을 어기고 시험장 감독위원으로 선정됐고, 자신의 수강생들에게 실기 점수를 높게 채점해 합격시키기도 했다. 평균 18% 수준인 합격률은 최대 77%까지 높아졌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인력 문제도 허술함을 더했다. 사실상 한 사람이 출제관련 업무를 담당하는데, 출제·검토위원, 시험장 감독위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행정상 검토위원으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에게 시험문제를 검토하도록 하면서 유출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공단의 직원은 국가기술자격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 관계자는 “공단의 고정적이고 획일화된 인력 선정으로 같은 사람이 감독·관리위원으로 반복 선정되고, 감독위원들이 수험생들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며 “시험장이 미리 개방되면서 부정행위를 미리 준비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측은 “이번 수사와 관련한 부정행위 방지대책으로 부정방지신고센터 설치운영, 감독위원 위촉예측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랜덤식(전산) 순위 지정 위촉, 금속탐지기를 활용한 통신기기 휴대 사전차단 및 처벌기준 강화, 관리위원의 문제지 접근 원천차단체계 구축은 시험시행에 이미 적용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무선인터넷 차단 신 부정방지시스템 구축, 문제유출우려가 있는 종목은 문제은행식 출제에서 합숙연금 출제로 변경하는 등 국가자격시험의 공신력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속된 A씨와 B씨, C씨는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2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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