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서 바라본 태화강 전경.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서울의 남산타워나 부산 용두산의 부산타워는 왜 도심의 중앙에 솟아 있을까. 산이 없던 파리시(市)가 평지에 철재 구조물을 세워 세상의 중심을 외친 이유는 뭘까. 산마루에서 세상을 조망하던 수고를 현대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구조물은 의외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망루에 서면 세상이 발아래 깔리는 우쭐함이 더 높은 구조물로 솟았는지 모를 일이다. 울산에서도 최근 울산대교 전망타워에 만족할 수 없어 남산의 높이를 끌어올려 볼거리를 만드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바로 오늘 울산여지도가 열세번째로 밟아보는 땅 남산이다.

 남산은 흔히 12봉이라 부르지만 실제로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삼호산과 은월봉 두 개뿐이다. 그 2개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길게 뻗은 12능선이 남산이다. 우리에게 남산은 친숙하다. 서울의 남산부터 경주 남산까지 대부분의 남산은 도심의 중심을 관통하며 사람들과 삶의 궤적을 같이한 친근한 산이다. 울산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남산을 중심으로 북쪽은 태화강 물길이 회를 치는 형상이고 남쪽은 거마산 자락에 나지막이 흘러내린 양지바른 터가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울산의 남산이 절묘한 것은 북쪽의 태화는 물론 남쪽 터전의 앞자리도 여천강이 물길을 놓아 배산임수의 쌍형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울산의 남산은 풍수지리상 안산(案山)이다. 안산은 풍수지리에서 주산과 청룡, 그리고 백호와 함께 기둥을 이루는 4번째 요소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는 의미다. 쉽게 떠올리면 서울의 남산을 생각하면 된다. 북악의 지세를 품고 그 기운을 안아 혈자리를 보하는 역할이 남산, 즉 안산이다. 그래서 안산은 형태상으로는 옥으로 만든 책상이거나 띠를 연상할 정도로 편안하면 좋다고 한다. 울산의 남산 열두봉우리는 그런 풍수비결에 딱 제격이다. 

 울산 남산의 주산인 은월봉(隱月峰)은 비밀이 있다. 동쪽 언저리를 타고 미끄러지면 지금의 신정동 일대다. 여기에 은월사(隱月祠)가 있다. 은월봉(隱月峰) 아래 위치해 은월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이 때문인지 울산의 남산은 신라 때는 거마산(巨馬山)으로 부르다가 고려 때부터는 은월봉으로 불렸다. 거마산은 김유신 장군과 연관이 있다. 은월봉 기슭에는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묫자리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유신의 조부 무력(武力) 공은 가야의 마지막 임금 양왕(讓王)의 아들이었고, 아버지 서현(舒玄) 공은 손자였다. 두 사람은  신라의 장군으로 큰 공을 세워 왕족 반열에 올랐다. 그런 인물의 후손인 김유신은 남산과 어떤 인연을 가졌을까. 김유신이 화랑시절 두동 천전리 일대부터 태화강 하류까지가 주무대였다. 당시 천전리 계곡에는 화랑도의 군사훈련기관과 합숙시설 등이 갖춰진 도량이었다. 화랑 유신이 천전리 수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남산 주봉인 은월봉을 찾은 뒤에 서라벌로 돌아갔다. 여러 차례 이어진 김유신의 은월봉 방문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고 큰 말을 탄 화랑이 지나갔다고 거마라는 이름을 붙였다. 

 거마산의 흔적은 꽤 오래 남았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남산 아래 마을을 거마동이라 기록한 것으로 보아 김유신의 흔적이 제법 오래 남은 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은월봉 아래 사당은  김유신 장군이 찾았다는 조부와 부친의 무덤 때문에 생겼다. 김유신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 후손들이 뒷날 무덤을 찾아봤지만 흔적이 없어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했다. 한 때 이 일대를 김유신 거리로 테마화한 흔적이 이런 연유 때문이다.

 여기서 남산의 주산인 은월이 궁금해진다. 은월은 말 그대로 달이 숨었다는 뜻이다. 북쪽 함월산이 달빛을 한가득 품고 있다면 남쪽의 은월봉은 그 빛을 숨겨 남쪽으로 은은하게 전했으리라는 짐작이다. 은월은 태화강의 동쪽 끝자리에 절벽처럼 맺음을 했지만 그 지세 때문에 오래전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지난 1981년 지표조사를 통해 이 일대는 산성이 있었던 곳으로 드러났다. 신라무렵부터 은월봉 꼭대기에는 봉우리를 둘러싼 태뫼식산성이 조성돼 있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산성 내부에서 인화문 토기 파편 등이 출토됐고 기와 조각과 건물 초석도 발견됐다. 

 미루어 짐작할 때 신라인들도 은월봉부터 삼호산까지 야트막하게 뻗은 울산의 남산이 땅의 기운을 북돋아 사람의 성정을 편안하게 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만큼 남산의 지세는 풍수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흔히 남산은 '남쪽에 있는 산’을 말하지만 큰 도시의 앞산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그런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한양의 남산이 그렇고 서라벌의 남산이 그렇고 개경의 남산이 그렇다. 울산과 가까운 경주 남산은 금오봉과 수리봉을 합쳐서 부르는 지명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가 있는 곳으로 신라 개국 이래 줄곧 신라인과 호흡을 같이하며 신성시된 땅으로 불국토를 꿈꾼 신라인들의 성지였다. 

   울산의 남산도 예사롭지 않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길고 편안한 형상은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고 남쪽은 주거 1번지라는 옥동부터 좌우로 신정과 무거가 여천강과 무거천을 휘감고 있다. 문제는 남산자락이 태화강을 따라 길게 드러누워 있지만 난개발로 서쪽 끝자리와 능선 상부에서는 조잡한 시설과 흉물이 산재해 있다는 점이다. 도심 한가운데 이만한 숲을 둔 도시가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울산 남산은 보물이다. 게다가 대한민국 제2호 국가정원을 발아래 둔 산자락에다 달빛을 숨긴 오래고 깊은 사연이 숨은 땅이니 그저 솟은 땅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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