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울산 장생포에 위치한 ‘문화창고’를 찾았다. 4층으로 올라가자,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 작가 토마 뷔유(Thoma Vuille)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대표 시리즈인 노란 고양이 ‘무슈샤(M. Chat)’는 유쾌하고 낙관적인 에너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전 세계 도시의 벽과 전철, 심지어 지붕 위에도 등장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왔다.
그는 최근 장생포 고래박물관 앞에 정박한 포경선 진양6호에 독창적인 그라피티 작업을 진행했다. 고래를 모티프로 한 울산의 상징 ‘장생이’와 자신의 대표 캐릭터인 무슈샤를 콜라보레이션 형태로 선보이며, 울산 장생포라는 산업·해양 도시를 세계에 다시 알리는 창의적 문화행위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문화창고 내부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한 뒤, 전시장 입구의 창가에 다가서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창 너머로는 거대한 화학공장의 설비와 정박한 선박들이 보였다. 예술과 산업이 물리적으로 마주하는 이 장면은, 처음에는 이질적이지만 곧 묘한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시각적 감흥을 자아냈다. 자연풍경 대신 기계와 철의 선들이 만들어낸 이 도시적 미감은, 장생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이었다.
울산은 흔히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이라 불린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굵직한 산업이 도시를 형성했고, 그 공로로 지금의 국가경제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제 울산은 단지 ‘산업도시’라는 역할을 넘어, 그 정체성을 문화로 확장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산업의 궤적을 문화로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울산만의 관광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산업유산을 문화로 전환한 성공적인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베로나는 고대 원형극장에서 매년 오페라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수천 년 된 유적이 현대 예술의 무대가 되고, 지방자치단체는 티켓 비용 일부를 지원함으로써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독일의 에센은 과거 탄광과 제철산업의 중심지였지만,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촐퍼라인 탄광’이 공연장, 박물관, 예술 창작공간으로 탈바꿈해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화재생 도시가 됐다.
국내 사례도 있다. 전북 군산은 일제강점기의 근대건축물을 보존해 ‘근대역사문화도시’로 브랜딩하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부산 영도는 ‘흰여울문화마을’을 중심으로 산업과 항만 도시의 이미지를 문화 콘텐츠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모두 도시의 고유한 자산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재구성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울산에도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무엇보다 울산은 산업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사냥 장면을 묘사한 선사시대 암각화로, 그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매우 크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천전리 각석, 외고산 옹기마을 등은 그 자체로 세계적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자산이다. 여기에 고래문화특구, 고래바다여행선, 고래축제까지 더하면 울산은 고래를 중심으로 한 독보적 문화도시의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다.
더불어, 세계적인 그라피티 아티스트 존 원(JonOne)이 울산과학대학교 서부캠퍼스를 방문해 그린 대형 벽화도 주목할 만하다. 2024년, 존 원은 이 대학의 공학관 외벽(가로 7m, 세로 19m)에 울산의 에너지와 도시적 활력을 상징하는 다채로운 색채의 그라피티를 남겼다. 그의 작업은 단지 미술작품에 그치지 않고, 울산이 국제적인 문화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선언이었다. 이러한 예술적 시도가 계속된다면, 울산은 산업과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로서 더욱 강한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울산만의 문화’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이다. 화려하고 대중적인 대규모 페스티벌도 좋지만, 진정한 경쟁력은 도시의 고유성과 맥락에 맞는 콘텐츠에서 나온다. 울산의 산업풍경은 그 자체로 ‘도시의 서사’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증기, 조선소의 타격음, 정박한 배들의 실루엣은 예술가에게는 훌륭한 영감의 재료가 되고, 관람객에게는 오직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제공한다.
산업은 울산의 과거이자 현재이고, 이제는 문화가 울산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산업이라는 강인한 골격 위에 문화라는 감성을 덧입히는 순간, 울산은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태어날 수 있다. 장생포 문화창고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동은 단지 한 장의 풍경이 아니라, 울산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암시하는 ‘미래의 단서’였다.
이제 우리는 말해야 한다. 울산도 문화를 품은 도시라고. 서정호 울산과학대학교 화학공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