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탁본 앞. 문명대교수 제공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탁본 앞. 문명대교수 제공

울산의 자랑이자, 대한민국 선사문화의 상징인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인의 보물이 됐다. 본지는 1970년 겨울, 마을 주민의 제보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천전리 각석의 바뀐 이름)를 발견한 데 이어 1971년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발견으로 '크리스마스 기적'을 이뤄낸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에게 반구천의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 의미와 가치 활용 방안 등을 들어봤다.

△ '반구천의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를 향한 여정이 길었습니다. 최초 발견·연구자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 1970년 최초로 발견 조사된 반구천 암각화가 발견 55주년 만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발견자로서 벅찬 보람과 감격을 남달리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감격을 우리 국민과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 반구대 암각화 발견 이전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부터 발견하셨죠? 처음 마주한 그 순간 심정이 궁금합니다.
- 당연히 마애불이라 생각하고 바위 암면을 본 순간 이끼 사이로 보이는 원과 마름모 등 기하학 무늬에 당황했고 아! 이것은 불교미술과는 다른 오랜 역사의 흔적이겠구나 하는 생각과 암면 아래쪽의 화랑 '랑'자 글씨들에 더욱 놀라며 너무나 중요한 유적임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문명대 교수 제공
문명대 교수 제공

△ 당시 주민들과 나눈 대화나, 현장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 1971년 3월에 40일간 본격적인 조사를 했을 때 마을 주민들이 모두 우리 마을 앞 쉼터에 호랑이가 여러 마리 있었다는 말을 한결같이 한 것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물이 줄어드는 12월 25일경에 이를 조사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은 가장 뜻깊은 장면이었고 이들 전언 때문에 1971년 12월 25일에 대곡리 암각화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 반구대 암각화의 발견은 그동안 국내외 역사학계에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었나요?
-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역사와 문화 연구에 가장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즉 대곡리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암각화로 우리나라 신석기 역사와 문화 연구에 결정적인 자료이자, 미술로 인정됐습니다. 천전리 암각화는 청동기시대 역사와 문화 연구에 가장 중요한 사료이자 미술이고 특히 우리 문자의 시원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하단에 새겨진 명문과 그림은 신라의 역사와 예술 연구에 가장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최근 편 책(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유적 발굴이나 사건 등이 유명하게 되면 자칫 왜곡돼 오보와 오류가 중첩하며 반구대 암각화가 이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와 관련, 꼭 언급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 반구천 암각화, 특히 대곡리 암각화나 천전리 암각화의 발견자에 오보가 있었는데 이 암각화의 발견·조사 주체는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책임자 문명대)이라는 사실이 분명하므로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1974년 2월 15일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 2차 조사 중 탁본 작업을 하고 있는 문명대(오른쪽) 교수.
1974년 2월 15일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 2차 조사 중 탁본 작업을 하고 있는 문명대(오른쪽) 교수.

△ 유럽의 알타미라, 라스코 벽화와 비교했을 때 반구천의 암각화만의 독자적인 특징과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 알타미라, 라스코 벽화는 바위에 그린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인 데 비해 반구천의 암각화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바위에 새긴 암각화여서 시대와 기법이 서로 다른 선사시대 암벽 미술이며, 특히 우리 반구천의 암각화는 한 시대에 그친 라스코 벽화와 달리 신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인 고대까지의 역사와 문화라는 점을 이해했으면 합니다.

△ 언젠가 교수님께서는 "반구대 암각화가 한국 고유 문자의 원형일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이에 대한 학계 반응이나 후속 연구는 어떤 방향으로 이어졌는지 궁금합니다.
- 아직 문자학의 전문가가 전문적으로 연구한 예는 단 한 건밖에 없으므로 앞으로 정부 기관에서 이에 대한 연구비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반드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라시대 불경에 표현된 기하학적 고문자의 원형일 수 있으므로 문자학 전문가를 국가적으로 양성하여 천전리의 기하학적 암각화를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 '제2의 반구대 암각화가 지금도 발견되지 않은 채 대곡천 다른 곳에 잠겨있을 수 있다'는 언급도 하셨는데?
- 대곡리 암각화가 잠겨있는 사연댐 댐 둑 옆 절벽에 호랑이 같은 암각화가 있다고 당시 댐 부근 마을에서 온 노인들이 전해 주었으므로 제3의 암각화가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댐 해체 시 심도 있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1971년 천전리 각석 조사 중 서울에서 내려온 동국대 사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사진. 문명대 당시 연구원(가운데 흰모자)이 설명하고 있고 당시 고고학계 최고 권위자였던 황수영 교수(오른쪽 끝 빵모자)도 학생들 옆에 나란히 앉아 있다.
1971년 천전리 각석 조사 중 서울에서 내려온 동국대 사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사진. 문명대 당시 연구원(가운데 흰모자)이 설명하고 있고 당시 고고학계 최고 권위자였던 황수영 교수(오른쪽 끝 빵모자)도 학생들 옆에 나란히 앉아 있다.

△ 교수님께서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고 가장 격조 높은 암각화"라고 하신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같이 언급하신 이유는?
- 대곡리 암각화는 바다 동물인 고래나 상어와 육지 동물인 사슴, 멧돼지, 호랑이 등이 한 암면에 각각 50여 마리씩 전후로 새겨져 있고, 그 외 고래잡이배와 고래잡이 광경, 사슴이나 멧돼지의 사냥 장면, 탈·무당 같은 제사장 등 250여 점이 한 암면에 새긴 예는 유일하며, 천전리 암각화는 큰 암면에 고대 문자로 생각되는 기하학 암각과 신라시대의 역사적 명문과 그림들이 새겨져 있어 이 역시 세계 유일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동국대 발굴조사단이 1970년 12월 24일 천전리 각석을 발견한 후 이듬해인 1971년 봄 1차 조사 때 발굴단이 동네주민들과 촬영한 사진. 가장 왼쪽이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 석굴암 조사를 주도한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이다.사진=문명대교수
동국대 발굴조사단이 1970년 12월 24일 천전리 각석을 발견한 후 이듬해인 1971년 봄 1차 조사 때 발굴단이 동네주민들과 촬영한 사진. 가장 왼쪽이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 석굴암 조사를 주도한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이다.사진=문명대교수

△ 최초 발견자로서, 반구대 암각화를 지켜낸 지난 50년을 돌아볼 때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 첫째 개인적으로는 『반구대 암벽 조각』 보고서와 『울산 반구대 암각화』 저서를 출간했을 때와 둘째는 발견 40주년 기념 천전리 암각화 학술대회(2010), 발견 45주년 기념 대곡리 암각화 학술대회(2014)를 개최해 반구천 암각화 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개최했을 때가 가장 보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후속 세대에게 반구천의 암각화를 어떻게 알리고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활용 방안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첫째 수준 높은 학술대회를 매년 또는 격년으로 개최하고, 둘째 교육재료로 만들어 온라인으로 널리 홍보할 필요가 있고, 셋째 암각화 연구를 활성화하는 국가·또는 재단의 연구비를 계속 지급하며, 넷째 대곡리 암각화는 8~10m정도 수위를 낮추고 사연댐을 철거해 암면을 보존처리 한 후 친환경 상태로 만들어야 하며, 천전리 암각화는 수 억년의 충해나 풍화작용 등 자연재해와 암면 탈락이 심한 만큼 수목제거, 물길내기, 개방형 지붕 설치, 암면 보존처리 등 주위 환경의 정비가 시급하다고 판단합니다.

천전리 각석 발견 당시 (1970년12월24일) 마을이장이었던 최경환 어르신이 앉아있다.
천전리 각석 발견 당시 (1970년12월24일) 마을이장이었던 최경환 어르신이 앉아있다.

△ 비슷한 질문입니다만 앞으로 반구천의 암각화 일대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을까요?
- 첫째 천전리와 대곡리 암각화를 과학적으로 보존하는 한편 둘째 대곡리와 천전리 암각화를 야외 박물관으로 승화시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차원에서 암각화의 모형 제작, 생생하고 다양한 전시·실체적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인근에 새롭게 마련하여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 대곡리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선사·고대 역사와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노력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습니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사진=문명대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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