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마친 고3 교실. 긴장감이 풀린 교실에서 일부 학생들이 휴대폰을 장시간 사용하거나 엎드려 잠을 자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정규 수업은 사실상 축소되고, 체계적인 프로그램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능 이후 기간이 ‘공백기’를 넘어 방치에 가까운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이 시기는 결코 가볍게 흘려보낼 시간이 아니다. 대학 진학, 취업, 군 복무, 사회 진출 등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를 앞둔 시점이다. 학생들은 더 이상 수험생이 아니라 곧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할 예비 사회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이 이 중요한 시기를 체계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교육의 마지막 단계가 공백으로 남게 된다.
특히 무기력한 생활과 스마트폰 의존은 생활 리듬을 무너뜨리고 자기관리 능력을 약화시킨다. 대학 생활 부적응이나 사회 초년기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학기가 의미 있는 경험 없이 지나간다면 이는 개인의 손실을 넘어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교육이 여전히 사고 이후 대응하는 ‘사후약방문식’ 운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종 사고나 사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교육을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대응 중심 교육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문제가 발생한 뒤 대책을 세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위험을 사전에 줄이고 삶의 역량을 키우는 예방 중심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수능 이후의 기간은 이러한 변화가 이뤄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다. 이 시기를 단순한 학사 운영의 여유 기간이 아니라 ‘전환기 예방교육 기간’으로 재정립하고, 동시에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예비 사회인 적응교육 시기’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노동 인권과 근로계약 교육, 금융·경제 기초와 신용관리, 법과 시민의식, 디지털 과의존 예방, 생활 안전과 자기관리 교육 등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내용이다. 아울러 대학 생활 적응 교육, 진로 설계 프로그램, 지역사회 연계 현장 체험과 직업인 특강 등도 체계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육은 학생들이 사회를 이해하고 스스로 삶을 관리하는 힘을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당국의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수능 이후 기간을 ‘전환기 예방 및 사회적응 교육 기간’으로 공식화하고, 학교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표준 프로그램과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 자율에만 맡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행·재정적 지원과 함께 실효성 있는 운영 점검도 이뤄져야 한다.
학교 역시 단순한 관리 중심에서 벗어나 학생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해 마지막 학교생활이 성장의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시간을 보냈다는 느낌이 아니라, 사회를 준비했다는 성취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수능 이후의 교실은 교육의 끝이 아니라 사회로 이어지는 마지막 준비 과정이다. 지금과 같은 방치와 공백의 시간이 아니라, 위험을 줄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전환기 예방교육과 예비 사회인 적응교육의 시기로 정착돼야 한다.
현장의 우려가 더 커지기 전에, 수능 이후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교육당국과 학교의 책임 있는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봉철 울산교총 상임고문·학성고 진로진학부장·본지 독자권익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