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라 소설가
강이라 소설가

 나폴리탄 괴담은 일본 인터넷 문화에서 유래한 짧은 형식의 공포 서사를 통칭한다. 이야기는 일상적인 공지문이나 규칙 속에 설명되지 않는 불길한 단서와 반복을 배치해 읽는 이의 상상으로 공포를 완성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렇다. 숲에서 길을 잃은 나는 우연히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나폴리탄을 주문하고, 이상한 맛을 느낀 뒤 다시 음식을 받는다. 아무 일 없이 가게를 나선 뒤, 그곳의 이름과 인기 메뉴를 떠올리며 섬뜩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설명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반복과 공백이 독자의 해석을 자극하지만 맥락 없고 열린 결말은 허무하고 때론 어이없다.

 미국-이란 전쟁이 세 달째에 접어든다. 미국이 밝힌 전쟁의 대의명분은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세계 평화와 이란의 반정부 시위 세력 지원 및 핵무기 개발 저지에 있다. 하지만 공격과 보복, 반격으로 인한 결과는 처참하다. 2월 말, 이란 남부의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180여명의 어린 학생들은 왜 공격받는 지도 모른 채 폭사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비슷한 문장들이 다른 이름으로 반복되며 공습, 오폭, 보복에 따른 민간인 피해자의 숫자는 늘어가고 있다. 왜 그 시간이었는지, 왜 그곳이었는지, 왜 그들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끝내 비어 있다.

 나폴리탄 괴담이 설명되지 않는 공백으로 공포를 완성한다면, 전쟁은 설명되지 않은 채 계속된다는 점에서 더 잔혹하다. 맥락에 대한 이해는 좌절되고, 해석의 여지는 부족하다. 봉쇄와 역봉쇄의 전세계적 인질극, 오판과 오폭으로 인한 선량한 피해자들의 시신이 남긴 이야기의 결말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전쟁은 점점 한 편의 괴담을 닮아간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았다. 소설 <마션>으로 유명한 앤디 위어의 세 번째 장편을 극화한 SF 대작이다.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에서 홀로 깨어난 과학자 그레이스가 인류의 멸종 위기를 막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다. 제목의 헤일 메리(Hail Mary)는 가톨릭 기도문으로 거의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던지는 마지막 승부수를 뜻한다. 지구로 되돌아갈 방법 없이 우주에 고립된 과학자는 같은 목적으로 먼 행성에서 온 외계 생명체 로키를 만나고, 두 존재는 서로 다른 언어와 사고방식을 극복하며 협력하여 마침내 각자의 종족을 구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한다. 과학 영화지만 이야기는 생존을 넘어, 타자와의 이해와 연대가 무엇인지를 묻는 휴먼 드라마의 성격이 짙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헤일 메리', 자비와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도문이자 서로를 향한 아름다운 승부수다. 광막한 우주에서 처음 만난 두 생명체도 서로를 위하는데, 같은 별에 사는 같은 인간에게 무엇이 그리 어려운가. 상대를 끝까지 인간으로 보려는 태도, 공포의 반복을 끊어내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적대와 배척을 벗어나 상대를 향해 먼저 손 내미는 선택을 할 때, 전쟁은 공포를 벗어나 더 이상 괴담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저서 『축의 시대』에서 서로 다른 문명과 종교가 비슷한 시기(기원전 900~기원전 200)에 타인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함께 슬퍼하는 공감과 연민의 정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몇몇 이들이 여전히 그 오래된 답을 외면한 채, 설명되지 않는 괴담 속으로 인류를 밀어 넣고 있다.

 미국과 이란 그리고 이스라엘은 신의 이름을 부르는 나라다. 지금 세 나라가 되새겨야 할 것은 그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이 가리켜 온 오래된 목소리다. 서로를 해치지 말라는 것,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

 괴담 같은 전쟁은 공포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종전과 화해를 향한 마지막 '헤일 메리'가 던져질 때, 우리는 비로소 원하는 결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영화제목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공식 포스터에 나온 대로 붙여서 '헤일메리'로 쓰고, 기도문 '헤일 메리'는 맞춤법에 따라 띄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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