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생 외숙모님께서 얼마 전 세상과 작별하셨다. 음력 1월 8일, 그날은 외삼촌 기일(忌日)이었다. 공교롭게도 3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날, 저승길 배에 올랐다.
별세 전날, 병문안 온 자녀들에게 “너거 아부지(너희 아버지) 제사상 올릴 때 ‘보고 싶어 한다’고 하고, ‘(저세상으로) 데리고 가 달라’고 전해라. 내가 정신을 잃더라도 ‘엄마!’라고 부르지 마라. ‘엄마’라고 부르면 저승길 가다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으니…….”라고 하셨단다. ‘살 만큼 살았으니 이제 가겠다’는 말씀이었다. 자식들이 살아가는 이승보다 망부(亡夫)가 있는 저승이 더 편하겠다고 생각했으리라.
아폴론 신(神)의 배려로 영생을 얻은, 그리스 식민지 쿠마에(Cumae)의 무녀(Sibyl)도 ‘늙어 살아있음’보다는 ‘죽음’을 소원했다. 쿠마에 무녀 이야기는 ‘4월은 잔인한 달’로 유명한 T. 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 첫머리(題詞)에 나온다. 육체가 늙어 쪼그라들어서 새장 속에 갇힌 무녀를 본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라고 물었을 때, 무녀는 “죽고 싶어.”라고 했다는 것으로 434행의 긴 시(詩)를 시작한다. 젊음이 없는 쪼그라든 육체의 영생은 구차할 뿐이라는 메시지이다.
<황무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2년 발표된 작품이다. 전 5장 중 1장 ‘죽은 자의 매장’에는 새벽안개가 잔뜩 낀 런던 브리지(London Bridge)를 건너 출근하는 시민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모습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죽은 자들의 행렬’로 묘사한다. 전쟁 이후 황폐해진 세상을 그렸다. 1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웁니다. /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T. S. 엘리엇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이라고 규정한다. 1년 열두 달 중 4월이 왜 그리 잔인할까. 다시는 살고 싶지 않은 ‘파괴된 세상’에서 봄비로 새 생명을 부추기는 자체가 ‘잔인한 일’. 그래서 차라리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는 겨울이 오히려 따뜻하다’ 했을 것이다.
<황무지>가 배경인 제1차 세계대전 종전으로부터 108년 지난 2026년 4월도 ‘잔인’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일으킨 전쟁이 두 달 이상 지속되면서 민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아랍권 방송사인 알자지라의 ‘사망자 및 부상자 실시간 추적 서비스’ 집계에 따르면, 전쟁 60일이 지난 4월 29일(현지시간) 기준으로 총 사망자는 6033명, 부상자는 4만2,563명에 이른다. 168명의 초등학생과 교직원을 숨지게 한 미사일 오폭에 “여기는 군 기지가 아니라 아이들이 공부하던 곳”이라고 온 얼굴로 분노하던 이란 시민의 모습은 전쟁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뿐만 아니라 민간 시설 파괴로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골레스탄 궁전을 비롯해 이란에서만 전국에서 130곳이 넘는 유적이 파괴됐다.
쿠마에의 무녀처럼 젊음 없이 육체가 쪼그라드는 영생은 죽는 것만 못하듯, 세상을 파괴하면서 평화를 얻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런 세상임에도 <황무지>는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으로 ‘주라’ ‘공감하라’ ‘자제하라’를 제시했다. 그리고 ‘평화’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語) “샨티 샨티 샨티(Shantih shantih shantih)로 시를 마무리한다. 서로 나누고, 공감하고, 자제함으로써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잔인한 4월은 가고 5월이 왔다. 박동순 전 울산대미디어 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