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용 남산초 교사·동화작가

 동화 쓰기에 격언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다. 주인공은 처음과 끝이 달라야 한다는 말이다. 

 이야기의 초반에 주인공은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주인공은 욕망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 사건을 직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상처받고, 좌절하고, 실패한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주인공은 목표를 이뤘거나, 이루지 못했을 테지만 분명 처음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걸 보며 우리는 주인공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다. 

 아이를 위한다고 넣는 악성 민원들이 도리어, 아이가 좋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이진 않을지 성찰이 필요하다.

 최근, 학교의 악성 민원에 관한 이야기가 이슈로 떠올랐다. 그 문제는 늘 있었지만, 위축된 현장 체험학습 문제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면서, 체험학습뿐만 아니라 교육 활동 전반을 위축시키는 민원 문제가 다시 부각된 것이다. 

 이런 민원들의 특징은, '내 아이만을 위한다', '내 감정만을 위한다', '정작 교육 공동체에 해를 끼친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금의 학교를 두고 "무균실이 돼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어떤 부모들은 자녀가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내 아이의 마음은 한 톨의 상처도 입어서는 안 되며, 기분이 나빠서도 안 된다는 과잉보호의 신념이 선생님과 학교를 향한 서슬 퍼런 민원으로 이어진다. 갈등을 조정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부모가 먼저 개입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선을 긋고 무균 상태를 만들어버린다.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미생물과 흙을 접하며 면역력을 키우듯, 일상의 자잘한 부정적 경험을 겪어내야 한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외로워하고, 억울하거나 화가 나는 감정 속에서 자신을 추스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회라는 거친 바다로 나갔을 때, 파도를 파괴적인 충격이 아닌 지혜롭게 넘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악성 민원이라고 부르는 일은 대개, 부모가 아이 앞에 놓인 자잘한 돌멩이와 자갈을 일일이 치워주려고 할 때 발생한다. 아이 앞에 있는 것이 돌멩이인지, 도움이 필요한 바위인지 주의 깊은 판단이 필요하다. 어쩌다 돌멩이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까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게 어른의 역할이다. 부모가 자잘한 감정 문제, 일상에 일어나는 사소한 갈등들까지 일일이 개입하는 건 아이들의 성장에 오히려 해악이 된다.

 일부 악성 민원 학부모로 인해 교사가 흔들리고, 교육 활동은 위축된다. 이어서 선량한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가 큰 목소리를 내며 민원을 넣는 학부모 때문에 피해를 본다.

 지금 시스템에서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교사 개인이 악성 민원을 오롯이 받는 구조를 개선하고, 응대 거부권을 보장해야 한다. 

 악성 민원이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돌변하는 지점이 바로, '아동 학대 신고'다. 교사의 정당한 학업·생활 지도는 아동 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원칙을 더 촘촘하게 입법화해야 한다. 그리고 악의적 신고에 대한 무고죄 적용이 필요하다. '기분 나쁘니까 당해 봐라'식의 무차별적인 아동 학대 신고로 고초를 겪는 교사들의 사례는 이미 넘쳐난다. 또한 악성 민원인에게도 합당한 법적 책임과 의무를 지울 필요가 있다. 

 현재처럼 악성 민원을 당해내지 못하는 시스템의 취약성을 그대로 두면, 교육 주체들의 마음 또한 한없이 취약해질 것이다.

  모든 아이는 정상적인 토양에서 좋은 주인공으로 성장할 권리가 있다. 이런 성찰과 철학이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나와주길 간절히 바란다. 송광용 남산초 교사·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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