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정기고사가 끝나면 많은 학생들이 성적으로 고민한다. 시험이 끝난 교실은 해방감 대신 무거운 침묵과 한숨으로 가득 차기 일쑤다. 어떤 학생은 전학을, 어떤 학생은 자퇴까지 고민한다.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 내신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개편되면서 내신과 학교생활기록부의 영향력이 커졌고, 이에 따른 부담 또한 크게 증가한 상황이다. 단 한 번의 시험이 입시의 성패를 가를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감이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글픈 현실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학생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는가.
많은 경우 공부의 목적이 ‘결과’, 즉 점수와 등급에만 맞춰져 있다. 숫자로 증명되는 결과만이 유일한 보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를 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공부의 과정 속에서 학생은 끈기와 성실, 열심과 열정을 배운다. 책상 앞에 앉아 쏟아 붓는 시간은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과정이 아니다. 하기 싫은 것을 해내고, 풀리지 않는 문제를 끝까지 붙잡으면서 포기하지 않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시간이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교과 학습을 넘어 평생을 살아갈 삶의 태도를 형성한다. 흔히 말하는 ‘7전8기’, ‘오뚜기 같은 인생’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평탄한 길만 걸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자산이다. 수없는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다시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훈련 속에서 비로소 길러진다. 청소년기에게 공부는 바로 그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훈련의 가장 일상적이고도 치열한 장이다.
따라서 시험 점수는 단순한 평가 결과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하나의 질문이어야 한다. 성적표를 받아 든 순간, 우리는 점수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노력의 궤적을 바라보아야 한다. “끝까지 해보았는가?”,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는가?”, “실패 이후 다시 도전했는가?” 이 질문에 스스로 떳떳하게 답할 수 있다면, 그 답이야말로 등급보다 훨씬 진정한 학습의 성과이자 진짜 실력이라 할 수 있다.
점수 자체에 과도하게 흔들릴 필요는 없다. 점수는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희미해지지만, 그 과정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형성된 태도와 습관은 평생의 자산으로 오래 남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앤젤라 덕워스(Angela Duckworth)는 이러한 힘을 ‘그릿(grit)’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목표에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고, 성과가 즉각 나타나지 않아도 멈추지 않으며, 실패 속에서도 다시 도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흔히 말하는 지능이나 배경보다 인생의 성취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바로 이 그릿이다.
결국 성과를 만드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이러한 지속하는 힘이다. 천재성 뒤에 숨겨진 지독한 성실함이 본질이라는 뜻이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의 사례 역시 이를 잘 보여준다. 빙판 위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치기 위해 그가 겪었던 수천 번의 엉덩방아와 부상의 고통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의 눈부신 성과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수없이 반복된 훈련 과정 속에서 축적된 끈기와 인내의 산물이다.
이제 우리는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한 번의 시험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지를 묻는 교육이 필요하다. 가정과 학교가 먼저 변해야 한다. 학생들 또한 점수에 일희일비하며 흔들리기보다, 눈앞의 시련을 디딤돌 삼아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 그것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그 위대한 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교실과 책상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눈앞의 문제를 묵묵히 마주하고 있는 아이들의 하루하루 속에, 조금씩 단단하게 쌓이고 있다.
박봉철 울산교총 상임고문·학성고 진로진학부장·본지 독자권익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