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가 결국 해냈다. 멕시코로 떠나기전 "지금까지 보지 못한 축구를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홍명보는 말 그대로 절대 볼 수 없고, 보고 싶지 않은 축구를 보여줬다. 이름값만 치솟은 크리스만이라는 우물쭈물 감독 이후 국내파로 새단장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은 출발부터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브라질 참사 이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홍명보를 국대감독에 올렸을 때, 축구팬은 등을 돌렸다. 이유는 불공정 때문이었다. 홍명보는 국대감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손사래를 쳤고, 실제 감독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지 않다가 돌연 수락하는 이중성이 시작이었다.
12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참담한 성적을 보인 홍명보는 국내팬들의 경질 여론에도 축구협회의 유임 결정에 몸을 숨겼다. 여론이 잠잠해 질것으로 믿었던 축구협회의 판단은 오판이었다. 하룻밤 사이 여론은 바다를 넘었고 결국 홍명보의 사퇴로 마무리됐다. 당시에도 홍명보의 계약 기간은 브라질 월드컵까지가 아닌 아시안컵을 포함한 이듬해 6월까지였다. 당시 홍명보는 자진 사퇴 대신 축구협회의 유임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가, 떠밀리듯 지휘봉을 내려놓은 바 있다.
당시 상황은 안타깝게도 지금과 비슷하다. 홍명보는 대표팀 구성이나 선발 라인업에서 경기력 보다 친분을 따져 선수 기용을 한다는 ‘인맥축구’ 논란을 달고 다녔다. 1무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인천공항을 밟았을 때도 홍명보는 책임지는 모습이 없었다. 말로는 책임을 이야기 하지만 행동이 없는 책임은 입놀림에 불과했다. 인천공항에서 마주한 여론은 엿 세례였고 성난 민심이 축구공을 찢어버릴 기세였다. 민심의 싸늘한 눈빛에 결국 홍명보는 물러났다.
이번에도 홍명보는 입으로만 책임을 이야기한다. 북중미 월드컵 탈락이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맞다, 이번에도 그의 임기는 내년 1월 아시안컵까지다. 지금 지휘봉을 내려놓는 것은 두번째 불명예이기에 최대한 버텨보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이번에는 팬들이 인천공항에 엿 말고 어떤 걸 던질지 궁금해진다. 그럼 점에서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당골에 갔다온 모양이다. 참사를 예견한 듯 월드컵을 끝으로 사퇴의 뜻을 밝혔다. 그래도 축구팬들은 이번 북중미 월드컵 참사가 한국 축구에서 정몽규-홍명보 라인의 ‘축구 카르텔’을 도려낼 기회라며 위안을 삼는 눈치지만 홍명보의 버티기가 침대축구로 번질지 걱정스럽다. 문제는 회장이 공백인 상황에서 홍명보의 버티기가 이어진다면 서류상 임기를 어떻게 정리할지가 의문이다.
축구 국가대표 감독의 거취가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의 이야깃감이 되고 경질을 위한 국회 청원으로도 이어졌다. 홍명보 경질은 온라인으로 급속하게 번지는 중이다. ‘홍명보 경질 청원’이 국민 청원에 공식 등장했다. 청원인은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부터 여러 의혹과 절차적 논란이 있었다"며 "2026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은 역대 최강의 스쿼드를 보유했음에도 1승 2패, 조 3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공정하게 선임된 감독 체제 아래에서 선수들의 잠재력이 발휘되지 못했다"며 "그 책임을 묻기 위해 홍 감독의 즉각적인 경질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홍명보 축구의 본질은 선수들과 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감독의 선임이다. 팬들은 왜 홍명보를 거부했을까. 12년 전 참담한 결과를 곱씹어며 한번 안된 놈은 두번도 안된다는 논리 때문일까. 천만에다. ‘울산 카르텔’이라는 이름의 선수들과의 불화, 인맥축구 논란 등 공정성을 잃은 행보가 첫째다. 여기에 말바꾸기 논란이 결정적이었다. 시즌 중 팀을 떠나지 않겠다는 몇번의 말을 바꾸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국대축구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가 문제였다. 마지막 한가지. 명장병이다. 스스로 스타의식이 너무나 강해 자신보다 이름이 앞서 나가는 선수들을 추켜세우지 못하는 ‘깜냥’이다 보니, 손흥민은 주장 박탈 논란부터 선발제외와 뜬금교체로 사기를 떨어뜨렸다.
홍명보가 해줘축구에 명장병이 걸렸다면 그 비스무리한 인물이 정치권에도 있다. 장동혁이다. 장동혁은 축구로 비유하면 대표적인 ‘침대축구’를 구사하는 인물이다. 불리하면 드러눕고 기회가 생기면 악을 쓴다. 지난 지방선거 전후의 장동혁 행보가 딱 그 수준이다. 지난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당무에 복귀했다. 누적된 피로라며 병실에 드러누웠던 그가 침대축구 구사로 시간끌기를 했지만 기류가 이상했다. 오세훈과 한동훈이 손을 잡는 듯한 모습에다 ‘좌동욱우재원’이라는 당권파 호위무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쏟아지는 당대표 사퇴 요구는 이미 당안팎에 요란했고 물러서면 끝이라 판단한 듯했다. 여기서 장동혁의 선택은 뻔했다. 복귀 일성은 징계카드였다. 그는 "당대표 거취는 당원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고 목젖을 세웠다. 장동혁의 다음 수는 뻔했다. 대표 흔들기를 주도한 몇몇 의원을 거론하며 "많은 징계 요청이 있었고, 미뤄 놓은 부분에 대해 어떤 결론이든 답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장 대표 퇴진론을 주장해 온 친한(친한동훈)계와 개혁 성향 의원들을 겨냥한 징계카드였다.
장동혁의 행태는 지금 대한민국 보수우파의 현주소다. 핑계와 남탓으로 일관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단식과 입원으로 동정표를 구걸한다. 장동혁의 지난 한달이 그랬다. 지방선거 직후 책임론이 거세지자 투표용지 부족사태를 파고들어 ‘부정선거론’을 며칠동안 흔들고 여의치 않자 입원실의 문을 잠궜다. 병실 밖의 여론이 사나와지자 징계를 들고 나왔지만 글쎄다.
웬만한 카드는 다 써버린 장동혁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제부터는 더 센 초강경수만 나올 상황이다. 결국 장동혁은 지방선거로 미뤘던 당 윤리위원회 재가동 카드를 꺼냈다. 한동훈을 자르고 배현진과 우재준 등 친한계의 이마에 ‘배신’의 인장을 찍어 선명성을 부각하겠다는 의도다. 결기가 살기로 느껴지는 장동혁의 눈빛에서 홍명보가 스쳐 지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아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