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도시 울산’을 추진하는 민선 9기에서 예술인의 권리와 안전한 창작환경을 보장할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 제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문화예술도시 울산’ 초청 강연회에 참석한 김상욱 시장. 울산매일 포토뱅크
‘문화예술도시 울산’을 추진하는 민선 9기에서 예술인의 권리와 안전한 창작환경을 보장할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 제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문화예술도시 울산’ 초청 강연회에 참석한 김상욱 시장. 울산매일 포토뱅크
민선 9기 울산시가 ‘문화예술도시 울산’을 주요 비전으로 내세운 가운데,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화관광재단 분리, 축제 재편, 소공연장 확충 등 문화정책 과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그보다 앞서 예술인이 안전하게 창작하고 정당하게 일할 수 있는 기반부터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상욱 울산시장은 최근 문화예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화예술정책은 지원 중심이 아니라 생태계 중심으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예술계는 이 같은 전환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예술인을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 출발점으로 거론되는 것이 ‘울산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 제정이다.

현재 국가 차원에서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이른바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2021년 제정돼 2022년 9월부터 시행됐으며, 예술인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 직업적 권리, 성평등한 예술환경 등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울산에는 이를 지역 현실에 맞게 뒷받침할 별도 조례가 아직 없다. 서울특별시와 광주광역시 등 일부 광역단체, 광주 서구·전남 광양시·대전 대덕구·서울 송파구·영등포구 등 일부 기초단체가 관련 조례를 제정한 것과 대비된다.

울산에서 조례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에는 실제 권리침해 문제가 있다. 울산민족예술총연합(이하 울산민예총)이 제공한 지난해 울산지역 예술인 권리침해 유형 자료를 보면 직업적 권리 침해가 전체의 64%로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수익 배분 거부·지연·제한이 54%, 불공정 계약이 10%를 차지했다. 공연·전시 수익 독점, 인건비 후순위 처리, 창작물 무단 사용, 저작권 침해, 지원금 지급 지연 등이 주요 사례로 꼽혔다.

2024년 울산예술인 권리 침해 유형(울산민예총 조사·제공)

구분비율주요유형
직업적 권리침해 64%불공정 계약, 수익배분 거부, 저작권 침해, 지원금 지연
표현의 자유 8%블랙리스트 사건, 전시·공연 취소, 행정간섭
성평등 환경 침해6%성희롱·성폭력, 성차별, 갑질·모욕, 차별적 구조
기타22%
표현의 자유 침해도 8%로 나타났다. 특정 정치 성향의 예술인에 대한 지원 배제, 전시·공연 취소,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 전시 불허, 지자체의 축제·공연 프로그램 임의 수정 등이 유형으로 제시됐다. 성평등 환경 침해는 6%로, 연극·영화 현장의 권력형 성폭력, 여성 예술인에 대한 기회 배제, 선후배 관계에서의 갑질과 모욕, 학력·출신 지역·연령에 따른 차별 등이 포함됐다.

전국적으로도 예술인 권리침해 신고는 증가세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자료에 따르면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 이후 신고 접수는 2023년 169건, 2024년 194건, 2025년 8월 말 기준 241건으로 늘었다. 2025년 신고 유형 중에는 수익배분 거부·지연·제한이 139건으로 가장 많았고, 불이익 조치 38건, 불공정 계약 강요 18건, 예술활동 성희롱·성폭력 14건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울산문화예술회관 소속 무용수를 둘러싼 직장 내 스토킹·성희롱·괴롭힘 사건은 지역 예술계 안전망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례로 꼽힌다. 울산민예총은 당시 성명을 통해 피해자 구제와 회복, 2차 가해 방지,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하며 울산시에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 제정을 요구했다.

조례는 단순한 상징 조항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울산에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예술인을 대상으로 예술 표현의 자유, 직업적 동등 지위, 성평등한 활동 환경, 정책 참여와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고, 권리침해 발생 시 상담·조사·구제로 이어지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울산이 문화예술도시를 표방한다면 예술인이 지역에 남아 창작할 수 있는 조건부터 마련해야 한다. 민선 9기 문화예술정책의 첫 과제는 그래서 ‘더 많은 지원’ 이전에 ‘더 단단한 권리 보장’이어야 한다.


김교학 울산민예총 이사장은  “예술활동을 하다 보면 누구나 부당한 일을 겪을 수 있지만, 이를 덮고 넘어가는 관행이 문제”라며 “당사자가 보호받고, 문제 제기가 정당하다는 인식이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교학 울산민예총 이사장은 “예술활동을 하다 보면 누구나 부당한 일을 겪을 수 있지만, 이를 덮고 넘어가는 관행이 문제”라며 “당사자가 보호받고, 문제 제기가 정당하다는 인식이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리 침해가 음지화되지 않게 지역 조례 필요”

▲[인터뷰]김교학 울산민예총 이사장

김교학 울산민예총 이사장은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가 “예술인이 창작을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예술 지원의 기본 원칙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다양성, 성평등한 창작 환경, 장애나 성별에 따른 차별 금지 등은 상위법에 담겨 있지만 단체장의 실행 의지가 없으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 예술계에서 권리침해가 적지 않았지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예술활동을 하다 보면 누구나 부당한 일을 겪을 수 있지만, 이를 덮고 넘어가는 관행이 문제”라며 “당사자가 보호받고, 문제 제기가 정당하다는 인식이 작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예술인은 어떤 경우에도 창작을 멈춰서는 안 된다”라며 “울산의 문화콘텐츠와 지역 문화자원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예술인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