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는 시민의 마음 흐름이 사회 질서의 구조 변화를 직접 형성할 수 있는 시대이다. 가치 기준이 단 하나뿐인 중앙 집중형 통제 수단을 두지 않는, 모두가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질서가 형성되는 시대가 됐다. 충분한 기반이 디지털 기술로 이미 마련됐다.
정부는 반도체 팹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함께 호남을 중심으로 건설하기로 발표했다. 주식 시장과 젊은 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직장 등으로 뜨겁게 부각되는 반도체 산업의 기반을 호남 지역에 짓겠다고 하면서 메가 프로젝트의 출발을 선언했다. 여기에 부울경과 대구, 경북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은 긴 역사 속 투자 통계를 가져와 이번 호남 인프라가 성사되더라도 새 발의 피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번 정부의 메가 프로젝트 출발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국토의 어디에 건설되더라도 국토 인프라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인프라의 본질이 그렇다. 그런데 이 시점에 한가지 지금껏 가지지 않았던 생각 하나를 가져본다. 어떤 지역도, 모두가 유치하려고 하는 반도체 팹과 같은 정부의 대규모 투자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녹색당 같은 아직 제도권 정치 영역으로 진입하지 못한 정당을 제외하고 그 어떤 정당과 지역 정부도 중앙 정부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대해 유치를 강력히 요구할 뿐, 이런 대규모 투자를 거부하는 정치 조직은 아직 없다는 것에 주목한다. 우리 사회에,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과연 있는지 반문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호남 지역에 반도체 팹이 지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본격적으로 반도체가 생산되기 시작하면 그 이익은 어디로 가는가? 지방 정부에도 지방세 형태로 간다. 물론 아주 적은 부분이다. 세금 대부분은 중앙 정부로 간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부분은 투자한 회사와 주주, 즉 자본으로 가게 된다. 지역에 일자리가 생기고 직간접적으로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되는 부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호남에 반도체 팹 건설’이라고 내건 엄청난 구호에 비하면 발생하는 대부분의 이익은 자본으로 간다는 점을 우린 너무 쉽게 간과한다. 그러면 당신은 “티나(TINA)!”를 외칠 것이다. There is no alternative (TINA), 즉 “그럼 뭐 다른 대안이라도 있나요?”. “티나”라고 하면 지금까지는 다른 모든 비판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런 얄미운 한마디에 꼼짝 못 하던 분위기에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디지털 정부 질서가 그것이다.
‘디지털 정부’는 이번 메가 프로젝트처럼 중앙에서 결정하면 거의 그대로 시행되는 미래의 희망이 통제되는 사회를 거부하는 정치 개념이다. 예전 같으면 정치로 저항했겠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기술이 가지는 개념으로 대안을 제안한다. 이런 식이다. 호남 반도체 팹 건설에 드는 자본 중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서 투자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정부 예산에서 투자되는 부분, 지방 지역의 토지, 공무원을 포함한 정부 조직으로 지원되는 부분을 모두 디지털 가치로 환산해서 호남뿐만 아니라 국가 전 지역의 시민에게 할당하는 디지털 방식으로 메가 프로젝트 출발에서부터 자본 모델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다. 반도체 팹이 완성되어 제품이 생산되면 그 이익이 세금으로 중앙 정부와 자본으로 흘러가 버린다. 그러고 나면 자본이 만든 이익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를 우린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본이 이익을 독점하는 신자유주의의 순환 고리를 벗어나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본이 투자되기 시작하는 지금 이 시점에 자본의 디지털 가치화 작업을 통해, 자본에서 이익이 생기는 즉시 시민에게 바로 흘러가게 하는 사업 모델을 만들어 시행하지 못한다면 중앙 집중적으로 관리되는 권력 통제형 사회의 불평등을 벗어나긴 불가능하다.
관리하는 사회의 중앙 집중 정부의 응축된 권력 욕망이 터져 디지털 세계로 분출해 나와 모두에게 쏟아지게 만드는 디지털 논리가 정치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디지털 정부 세상을 욕망해 본다. 다시 강조하지만, 디지털 정부는 디지털 분야에 투자하는 정부가 아니라 디지털 기술의 개념이 만드는 정치 개념을 말한다. 조재원 UNIST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