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편집국장·이사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 땅’ 2026 북중미 월드컵 4강전에서 극적으로 잉글랜드를 꺾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현수막을 펼쳤다. 말비나스,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다. 오랜 시간 영토분쟁으로 과거의 대영제국을 외친 잉글랜드를 향해 아르헨티나 축구선수들은 FIFA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뭉갰다. 이 장면은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우리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했다. 경기 직후 박종우는 "독도는 우리 땅" 피켓을 들고 달렸다가 올림픽 메달 수여가 보류되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아르헨티나가 말비나스를 이야기 하고 박종우가 독도를 펼쳐든 것은 모두 땅에 대한 끈끈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땅의 역사는 누군가가 깃발을 꼿거나 선을 그어버린다고 남의 땅이거나 다른 역사가 되지 않는다.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기록과 오래된 문화의 축적이 켜켜이 쌓여야 비로소 땅은 사람의 역사로 오늘과 연결되게 된다.

 한 나라의 역사에는 사(史)가 있다면 지역에는 지리(地理)가 있다. 땅의 모양에 역사를 담으면 지리지가 된다. 지리지는 지역의 생김새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풍속과 문화를 기록한 책이다. 울산의 현재는 산업도시지만 과거는 선사문화부터 철의 역사와 불교와 국제무역의 역사가 뿌리를 내린 고장이었다. 필자는 몇 년전부터 울산의 곳곳을 걸으며 땅의 역사와 지리와 인물, 그리고 문화를 살폈다. 보고 듣고 기록했고 검증이 필요한 부분은 기록을 뒤졌다. 이 작업은 울산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 미래를 위한 열쇠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 기록의 시간이 다섯해가 지났고 오늘로 본지도 창간 35주년을 맞았다. 창간 30주년쯤에 시작한 작업이 벌써 5년이 됐다. 그 시간동안 두서없이 발길 닿는 곳을 두루 거쳤다. 이제 이 작업의 새로운 정리가 필요해졌다. 발길 닫는대로 걸어온 여정을 뒤돌아 보고 미처 살피지 못한 숨은 땅의 역사와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할 시간이다. 조국 근대화의 60년 세월에 가려진 사라진 땅의 이야기와 그 땅에 남아 있는 오래된 땅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둬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대한의 동남쪽에 위치한 울산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다. 빙하기와 함께 남으로 이동한 인류가 육로와 해로를 통해 울산 땅에 들어와 정착사회를 이뤄 살았다. 그 증좌는 1990년대 이후 수많은 발굴의 성과로 증명되고 있다. 서생면 신암리와 웅촌 검단리, 삼남의 신석기 유적과 장현동 황방산 신석기 유적, 화봉동과 매곡, 중산에 펼쳐진 울산형 집자리와 청동기 문화의 다양한 증거가 이를 말해준다. 1990년대 이후 서생 신암부터 북쪽 중산과 서쪽 조일까지 각종 유적과 유물이 관계 연구기관과 대학박물관에 의해 발굴됐다.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도 단위의 ‘울산특별건설국’이 법정기구로 들어서면서 울산은 개발의 삽질이 본격화 됐다. ‘오천년 빈곤의 역사’를 끊어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사명 앞에 오래된 땅 울산의 산하는 불도저와 포크레인의 기계음에 도륙 당했다. 댐이 만들어지고 도로가 뚫리고 물길이 끊기고 공장이 들어섰다. 그런 어느날 사연댐 상류에서 고래와 거북, 사슴과 호랑이 등의 각종 동물 그림이 발견됐다. 그 윗자리 천전리의 암벽에서는 원·삼각형·마름모 등의 각종 기하학적 무늬와 신라인의 명문, 기묘한 그림이 펼쳐져 있는 것이 세상에 드러났다. 개발의 삽질로 대한을 공업국가로 변신하려는 현장이 알고보니 선사시대 인간사회의 유력한 생활터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발굴이 계속되자 그 증좌는 점점 생생한 유적과 유물로 확증을 심어줬다. 사실이었다. 울산은 반구대암각화 이전부터 시작된 선사인의 땅이었다가 고대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굴아화촌이라는 소국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일구고 역사를 만들어 온 10,000만년의 역사를 가진 땅이었다. 기록으로는 신라가 파사왕 때 굴아화현(屈阿火縣)을 두고, 남쪽에는 생서랑군(生西良郡), 동쪽에는 동진현(東津縣), 언양 쪽에 거지화현(居知火縣)을 두었다. 경덕왕 때 하곡현(河曲縣)으로 이름을 고치고 사포를 중심으로 상업항을 일궈 세계 4대도시 서라벌의 배후도시로 키웠던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

 지금은 산업수도로 변한 울산의 역사는 그만큼 깊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사람들은 울산을 여전히 ‘굴뚝 도시’로 인식한다. 하지만 울산은 앞서 밝힌대로 대한의 땅에 인류의 시원을 그려낸 오래된 미래였다. 유라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울산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터전이 돼 우리의 선인들이 아득한 원시시대부터 육로나 해로를 따라 들어와 정착사회를 이뤄 살았던 곳이다. 거짓말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울산박물관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울산은 천혜의 땅이다. 그 천혜의 땅에서 일궈낸 문화의 힘이 고대국가와 신라, 고려와 조선을 지나 오늘에 연결돼 있다. 그 오랜 역사의 끝자락이 산업수도 울산이지만 오래된 과거는 울산을 그렇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10,000년 전 이 땅에서는 해양문화와 북방문화가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1,000년 전에는 통일신라의 국제무역항이었다. 그 뿐인가. 고려 이후 수군의 거점지역으로 해군항의 역할을 해온 것이 울산이었고 왜란의 위기 속에서 분연히 일어난 의병의 도시로 조정의 인정을 받아 도호부로 승격한 땅이 울산이었다. 그 피 땀 눈물의 시간이 경상좌도의 중심으로 자리한 곳이 울산이었다.

    그런 울산이 고작 대한민국 산업화 60년의 역사로 평가되는 일은 불행한 일이다. 산업화 60년이 비록 대한민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산업수도를 이끈 영광의 시간이었다 해도 그 역사가 울산의 전부는 아니다. 60여년 전 울산에 모여든 대한의 젊은이들은 이제 울산의 주인으로 새로운 울산인을 낳아 도시의 살아 있는 역사가 됐다. 반구대암각화로부터 첨단 산업단지까지 서에서 동으로 뻗은 100리의 태화강 물줄기에는 10,000년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울산을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이제 울산의 역사와 문화는 산업화 이전의 역사에 대한 촘촘한 고증과 실증을 통해 그 본래의 가치와 위상을 찾아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 위대한 땅의 역사는 그런 평가를 받을 충분한 자격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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