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신운수㈜에서 차량 운행 전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덕신운수㈜에서 차량 운행 전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울산시 택시운송사업조합에서 발급한 택시운전자격증명서.
울산시 택시운송사업조합에서 발급한 택시운전자격증명서.
‘시민이 주인인 울산’, 새롭게 닻을 올린 민선 9기 울산시의 표어다. 그렇다면 이 도시의 주인인 시민들은 어떤 울산을 살아가고 있을까. 본지는 창간 35주년을 맞아 취재기자가 택시 운전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기자는 무더위가 한창인 7월 첫 주말, 울산의 한 법인택시 소속 기사로 임시취업해 3일 동안 지역 곳곳을 누비며 택시드라이버로 변신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3일간의 택시드라이버를 통해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 속 다양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택시 뒷좌석은 팍팍한 삶의 고민을 토로하는 공간이자, 생활 민원이 쏟아지는 달리는 신문고였다. 우연히 만난 시민들의 목소리에는 지금 울산이 귀 기울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편집자 주

택시 운행 모습.
택시 운행 모습.
#서민들의 커지는 한숨, ‘부자 도시의 역설’

울산지역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어선 날씨, 무더위 탓인지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승객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이동하던 중 남구 태화로터리 부근에서 한 여성이 손을 흔들었다. 70대 여성 승객은 태화동의 한 마트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물가가 안 오르는 게 없어. 계란 값도, 채소 값도 너무 비싸서 시장보다 오히려 농협마트가 더 싸다니까. 그래서 일부러 택시 타고 가고 있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통시장이 저렴하다는 것도 옛말이 된 지 오래라며, 조금이라도 저렴한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택시비 지출을 감수하고 마트를 찾는 서민의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GRDP(지역내총생산) 전국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울산이지만 화려한 지표 뒤에는 높은 체감 물가에 짓눌린 시민들의 한숨이 깔려 있었다.

서울에서 살다가 일자리를 찾아 울산으로 온 50대 남성 승객 또한 높은 체감 물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음식값 등 기본 물가는 서울 못지않게 비싼데, 그만한 퀄리티나 만족도를 주는 맛집은 별로 없는 것 같다”라며 “있는 사람들이야 살기 좋지, 우리 같은 서민들은 진짜 죽을 맛이다”라고 말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울산은 물가 상승률이 전국 평균을 웃도는 지역 중 하나로 나타난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높은 GRDP를 만들어 냈지만, 서민들에게는 소득은 타 지역과 비슷한데 물가만 대기업 수준인 팍팍한 도시인 셈이다.

#아이 아프면 짐 싸서 양산으로?벼랑 끝 소아 의료와 복지 엇박자

주말 밤, 동구 일산해수욕장에서 9살과 7살 두 아들의 손을 잡고 탄 젊은 부부는 집으로 향하며 지역 의료시스템에 대한 하소연을 내뱉었다. 집 앞에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이 있지만 소아과 의사가 없어 아이들 진료를 안 받아준다는 하소연이었다.

아이 엄마는 “소아과 의사가 없는 게 크다. 아이들이 아플 때 양산으로 가거나 포항으로 갔다. 요즘에는 독감하고 수족구병이 유행이었는데 병원 가는 게 힘들다. 어떤 병원은 아이들 진료를 보기 위해 오픈런을 해야 하는 현실이다”고 말했다.

열악한 울산지역 소아 의료 인프라 속에서 부모들의 불안감은 이미 임계점을 넘은 상태였다.

저출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외치면서도 각 구·군별 정책이 천차만별인 현실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었다. 남구에서 탑승한 임신 29주차 여성은 남편과 함께 카페에 가는 길이었다.

그는 “울주군은 임신부 교통비가 달마다 10만원씩 총 100만원이 나오는데, 남구는 임신 중 딱 한 번 10만원 지원해 주는 게 끝이다”라며 “교통비 지원 말고도 다른 혜택도 차이가 많다. 같은 울산 시민이지만 거주지에 따라 지원 격차가 크게 차이 나는 건 아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시민 누구나 소외감 없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이고 촘촘한 복지망이 필요해 보였다.

남구의 한 택시 승강장에 정차해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남구의 한 택시 승강장에 정차해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FM대로 하면 쫓겨날 수도”…현장 노동자의 씁쓸한 고백

울주군의 한 대규모 현장에서 일한다는 50대 남성 승객은 최근 토사 붕괴로 작업자가 사망한 사고를 언급하며 작업 현장의 모순을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사고가 저희 현장에서 발생했다”며 “회사에서 항상 하는 말이 안전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 현장 사정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렇게 FM대로 안전 감시단 눈치 보며 일을 하면 속도가 안 나고, 정해진 물량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압박감이 크다. 저희들은 회사원이 아니라서 일 하다가도 나가라 하면 나가야 한다.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산업수도 울산의 이면에는 끊임없이 산재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작업 현장 깊숙이 자리 잡은 느낌이었다.

#5000만원 빚진 고3 학생?교실까지 집어삼킨 ‘불법 온라인 도박’

아이들의 교실에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에 오른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교내 불법 온라인 도박 실태를 들려줬다.

이 학생은 “3학년은 잘 없는데, 2학년들은 매주 두 세명씩 불법 토토를 하다가 교무실로 잡혀간다”며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서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부모님 돈까지 빼돌려서 5,000만원을 잃은 애도 있다고 들었다. 최근에는 월드컵을 경기를 놓고 돈을 많이 걸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온라인 불법 도박이 스마트폰을 타고 초등학교 교실까지 침투했다는 점이다. 학생은 “요즘 빠르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온라인 불법 도박에 호기심을 갖고 시작한다”고 귀띔했다.

동구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 승객
동구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 승객
#길 위에서 만난 울산 시민들

하루 12시간가량 지역 곳곳을 다니며 수십여명의 시민들을 만났다. 한 노부부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며 버스 정류장에서 택시를 잡아탔고, 스리랑카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어를 배우며 울산에 적응하고 있었다. 울산HD의 경기가 끝나고 차들로 뒤섞인 문수구장 일대에서 만난 청년은 소소한 일상을 늘어놨으며, 한 어르신은 울산 정치 상황을 두고 열변을 토했다. 경제, 문화, 정치, 사회 등 거대 담론과 이슈는 울산 시민 개개인의 작은 이야기로 쪼개져 택시 안을 채웠다.

2일차 택시 영업을 마친 모습.
2일차 택시 영업을 마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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