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집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이 군자란이 또 꽃을 피우네.” 하기에 후다닥 책을 덮고는 가서 보니 정말 작은 꽃이 하나 피어나고 있었다. 3일 전 물을 줄 때는 보지 못했는데. 깜짝 놀라서 주변을 살펴보니 네 송이가 또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 신기해서 지난해는 언제 꽃이 피웠는지 휴대폰 카메라에서 찾아보니 12월 16일에 피었다고 나왔다.
급히 AI에게 물어봤다. 그가 답했다. ‘군자란은 보통 일 년에 한번 봄(2∽4월)에 꽃을 피웁니다. 환경이 잘 맞거나 영양이 풍부한 경우 드물게 가을에 한 번 더 피기도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라고 대답을 한다. 우리 집에서는 가을의 끝에서 겨울이 끝나기 전에 피워서 나를 기쁘게 해줬는데.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어머님의 기일이 9월 중순인데 그 후로 꽃이 피었다.
군자란은 정말 우연히 내게 왔다. 어머니는 꽃을 정말 좋아하셨다. 우정동 집에서 태화강변에 꽃이 피면 나에게 만개한 꽃밭을 보러 가자고 했다. 집에서 어머니의 걸음으로 걸어가면 20여분이 걸렸다. 꽃을 좋아했기에 집에서도 화분에 꽤 많은 꽃을 키웠다. 임종하기 2년 전쯤 그 군자란을 줬다.
“이 난은 네가 가지고 가서 키워봐라. 우리 집에서는 햇빛을 잘 받지 못해서 그런지 꽃이 피지도 않고 비실비실 하기만 하네.” 하면서 주셨다. 나 역시 군자란을 죽이지 않고 잘 키운다는 보장이 없었지만 주니까 그냥 덜컥 받아왔다. 집에 가져와서는 다른 난과 같이 주기적으로 물을 주었다. 2년 간 죽지 않고 꽃도 피지 않았다. 그해, 어머님이 먼 길을 떠났다. 그 가을 끝에 군자란의 넓은 잎 속에서 빨간 색의 꽃잎이 머리를 내밀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꽃을 피웠기에 깜짝 놀랐다.
“어, 군자란이 꽃을 피웠네.” 우리 부부는 군자란이 죽지 않고 꽃을 피운 것이 어찌나 신기하든지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군자란은 한 송이가 피어나면 또 다른 꽃송이가 나왔다. 꽃송이가 차례차례로 떨어졌다가 새로운 꽃송이가 그 자리에서 피었다. 마치 군자란의 꽃송이는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온 것 같아 더 반가웠다. 거실에는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 꽃이 올해도 피었다. 세 번째다. 불과 반년 전에 꽃을 피웠는데. 아는 지인들에게 카톡을 보내면서 여기저기 자랑을 했다. 우리 어머니가 준 군자란이 또 꽃을 피웠다고.
군자란의 잎은 두 갈래씩 짝지어 나오며, 꽃대에서 여러 송이가 나온다. 군자란은 남아프리카가 원산지고 꽃말은 ‘고귀한 마음’이라고 한다. 속만 썩이던 아들이 힘든 세상을 과연 잘 살아가고 있는지 그 걱정을 아직도 놓지 못하고 계시는 모양이다.
“어머니, 걱정하지마세요. 저도 무사히 퇴직을 하고는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있으니까요. 다시 만나도 제 어머니가 돼주세요. 어머니, 죄송하고요, 너무나도 보고 싶어요. 어머니가 주신 군자란의 향기를 어머님이 계신 그곳으로 보냅니다.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한 아버지와 편안히 계세요.”
군자란이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새 촉이 머리를 내민다.
올 여름에는 첫 시조집을 내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시조집을 탈고할 때까지 어머니가 내 곁에 계셨다. 그 시조집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물론 군자란에 대한 시조가 있다. 김봉대 울산아동문학협회장
유물
어머니 주고 가신 군자란이 꽃피웠다
어디에 숨어있다 이제야 나오는지
창밖엔 눈 내리는데, 향기로 집을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