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향 창업일자리연구원 홍보팀장·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
전미향 창업일자리연구원 홍보팀장·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

마을기업 취재를 위해 길을 나섰다.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는 먼 길 운전도 솔직히 부담스럽다. 울산 도심을 벗어나 공단을 지나고, 덩치 큰 화물차 사이를 곡예 하듯 빠져나가며 시간과 다투다 보니 어느새 울주군 서생면이다. 그렇게 도착한 간절곶토마토협동조합.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곳에 오면 금세 마음이 느긋해진다.

사실 이곳은 나의 소중한 취재원이자 토마토 단골집이다. 요즘처럼 달고 예쁜 토마토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이곳 노지 찰토마토에서는 어릴 적 밭에서 따 먹던 ‘진짜 토마토 맛’이 난다. 한입 베어 물면 속이 꽉 찬 과육 사이로 새콤함과 단맛, 특유의 감칠맛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래서 토마토를 핑계 삼아 진하해수욕장 길로 종종 나선다. 가는 길에 물회 한 그릇 먹고, 게장도 맛보고, 한적한 카페에서 블루베리 셰이크까지 마시면 그럴듯한 나들이 코스가 된다. 물론 나는 늘 말한다. “취재하러 갑니다.”

남들이 보면 여행하듯 다니며 글 쓰는 일이 꽤 낭만적으로 보일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특히 간절곶 토마토와는 하우스 토마토가 나올 때부터 노지 토마토가 밭에서 사라질 때까지 제집 드나들 듯 오갔다.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쓰고, 또 새로운 홍보거리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KBS에서 ‘6시 내고향’에서 촬영을 온다는 것이다.

‘드디어 전국구로 가는구나.’

제작진과의 사전 미팅부터 함께했다. 그동안 취재하며 쌓아둔 자료를 다시 뒤지고, 토마토의 특징과 마을기업 이야기를 정리했다. 간절곶의 노지 찰토마토는 그냥 ‘맛있는 토마토’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는 아까운 작물이다. 이곳은 대를 이어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바다와 맞닿은 델타지역의 비옥한 토양, 풍부한 햇살과 해풍 속에서 토마토와 홍감자, 양파 등 맛 좋은 채소가 자란다. 특히 노지 토마토는 자연의 시간을 고스란히 견딘다. 비도 맞고 바람도 맞고, 뜨거운 햇살도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여름 두 달 남짓 만날 수 있는 진한 맛을 만들어낸다.

촬영 날, 하필이면 마른장마에 폭염의 기세가 절정이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흘렀다. 그런데 제작진은 카메라와 장비를 들고 밭을 오갔다. 셔츠는 금세 땀으로 흥건해졌고 얼굴에서는 말 그대로 비 오듯 땀이 떨어졌다. 방송 한 장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상투적인 인사가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붙잡은 것은 카메라 앞에 선 칠순의 노부부였다. 평생 흙을 만진 손으로 잘 익은 토마토를 따 들고 환하게 웃었다. 몇 번의 NG가 나면 다시 일어섰다가 앉고, 같은 말을 또 했다. 삼복더위에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도 했지만 두 분의 표정은 시종 즐거웠다. 자식처럼 키운 농산물이 전국 방송을 타고 알려진다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까. 주름진 얼굴에 번지는 웃음이 그날 토마토보다 더 붉고 환했다.

더 감동적인 것은 촬영팀을 위해 내놓은 먹거리였다. 직접 농사지은 감자를 삶고, 밭에서 거둔 농산물로 음식을 마련했다. 물 대신 토마토를 듬뿍 넣은 카레와 스파게티, 샐러드까지 한 상 가득 간절곶의 맛이 차려졌다. ‘지산지소’니 ‘로컬푸드’니 어려운 말을 붙이지 않아도 됐다. 내가 사는 땅에서 난 것을 함께 나눠 먹는 일. 그것이 가장 오래된 지역순환경제가 아닐까 싶었다.

간절곶토마토협동조합은 행정안전부 지정 마을기업이다. 토마토와 홍감자를 번갈아 심어 땅의 힘을 지키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토마토는 버리지 않고 100% 생토마토즙으로 만든다. 생산과 가공, 판매를 마을 사람들이 함께한다. 농사를 넘어 마을의 삶을 지키는 방식이다.

촬영은 무사히 끝났다. 첫 방송 출연도 아닌데 노부부는 담담했고, 나는 오히려 마음이 묘했다. 대를 이어 고향의 흙을 지키며 농사짓는 이들의 뒷모습에서 우리 농업의 내일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또 이 밭의 뒤를 이어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오래오래 이 진한 토마토 맛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방송 카메라에 담긴 것은 붉은 토마토만이 아니었다. 땀 흘리는 농부와 제작진, 마을의 오래된 시간, 그리고 대를 이어 지켜온 삶의 맛이었다. 간절곶의 여름은 뜨거웠다. 참으로, 맛있게 뜨거웠다.

전미향 창업일자리연구원 홍보팀장·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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