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현역’인 김선이 작가는 지난해부터 경주 작업실이 아닌 울산 집으로 작업 공간을 옮겼다. 서울과 지방의 갤러리 초대전, 전국 아트페어 참여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중학교 시절부터 그려온 드로잉 작업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수천 장에 이르는 드로잉은 그의 작업 세계를 지탱해 온 가장 오래된 바탕이다.
◆‘깨지지 않는 도자기’를 그리다
“제 작품은 마티에르(거친 질감) 작업이라 말리고 덧바르는 시간이 필요해요. 거의 매일 작업하고 있죠.”
김선이 작가의 대표 작업은 ‘깨지지 않는 도자기’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경주박물관에서 토기와 도자기를 접했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는 청자 도예가 좌봉 김응한 선생에게 도자기를 배웠고, 흙을 만지며 자연스럽게 ‘흙그림’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는 실제 도자기를 굽는 대신 캔버스 위에 토기와 도자기를 빚는다. 흙을 곱게 치고, 물감과 섞어 바탕을 만들고, 수차례 덧입히며 부조처럼 입체감을 올린다. 마지막에는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표면을 문질러 오래된 도자기의 때와 균열, 질감을 표현한다.
“도공들이 물레를 돌리듯이 저는 캔버스 위에서 손가락으로 도자기를 빚는다고 생각해요. 경주박물관에 있는 도자기들은 문화유산이라 우리가 가질 수 없잖아요. 그래서 캔버스에 깨지지 않는 도자기로 재현하고 싶었죠.”
김 작가의 손끝에는 세월이 남아 있다. 도자기의 오래된 표면을 표현하기 위해 손으로 문지르고 덧입히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손가락 마디는 굽고 지문도 희미해졌다. 그는 “남들이 다 하는 것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작업을 해야 작가로서 예술성과 회화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모네와 고흐 작품보다 할머니 그림”
김 작가는 자신의 작업 태도를 “군자지향(君子志向)의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보물을 소장한다는 마음, 문화유산을 품는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해요.”
그런데 작가의 출발점에는 늘 드로잉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은 뒤부터 그는 ‘김밀레’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그림만 그리는 아이였다.
특히 연필이나 펜, 붓 같은 간단한 도구로 대상을 짧은 시간에 그려내는 크로키 작업은 그가 울산에서 선두적으로 이어온 분야다. 인체 누드 모델을 구하기 위해 대구까지 오가며 수십 년 동안 작업을 이어온 시간도 그의 작품세계를 단단하게 만든 바탕이다.
울산 풍경도 그의 작업 안으로 들어왔다. 2018년 울산여류작가회 전시에서는 십리대숲의 떼까마귀와 은하수를 그린 작업을 펼쳤다. 십리대숲을 배경으로 떼까마귀 1,000마리를 담은 작품도 있다.
가족에게도 그의 그림은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김 작가의 아들은 블로그 글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찾은 아이들이 모네와 고흐의 작품보다 할머니의 그림을 더 강렬하게 기억했다고 전했다. “할머니 그림은 만지면 울퉁불퉁하고 재미있고, 우리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것이 손자의 말이다.

◆울산매일과 맺은 26년 전 인연
김 작가와 본지의 인연도 깊다. 그는 지난 2000년 오영수문학상 장편소설 당선작인 강신순 작가의 『나무와 새』 연재 당시 6개월 동안 삽화를 맡았고, 제12회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인 공지영의 단편소설 「섬-베를린 사람들3」 특집판 삽화도 그렸다.
1951년 경주에서 태어난 김선이 작가는 경희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36회, 국내외 아트페어 69회, 단체·그룹전 500여 회에 참여했으며, 울산미협 올해의 작가상과 울산예총 제1회 문화상을 받았다. 한국미협, 울산미협, 울산여류작가회, 드로잉드로잉회, 틈크로키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작품은 남원 수지미술관과 울산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김선이 작가는 현재 울주군 두동면 묵리카페에서 조미옥·김인숙 작가와 함께 3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8월 15일까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