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지산(富士山)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3,776m에 이르는 일본의 상징이자 영산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산의 형태는 거대한 사발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가파른 원추형을 이루고 있으며, 굳어진 용암과 화산재가 층층이 쌓여 형성된 성층화산이다. 정상에는 지름 약 0.8㎞, 깊이 약 0.25㎞의 거대한 분화구가 자리하고 있으며, 300년 넘게 분화하지 않은 휴화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등산은 매년 7월 초부터 9월 초까지 한시적으로 허용되며, 4개의 등산로 가운데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코스는 도쿄에서 직행버스로 접근할 수 있는 ‘요시다 루트’이다.
필자가 속한 우리 회원 일동은 김해국제공항을 출발해 나리타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마친 뒤, 버스로 약 3시간 30분을 달려 ‘스바루라인 오합목’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는 간간이 빗줄기가 흩뿌렸고, 회원들 사이에서는 다음 날 산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조용히 오갔다.
‘스바루라인 오합목’은 요시다 루트의 관문답게 후지산을 오르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정상에 다녀온 성취감과 이제 막 정상을 향해 오르려는 굳은 결의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담겨 있었다. 등산에 필요한 필수 장비만 챙긴 뒤 매표소에서 입장권(1인당 4,000엔, 한화 약 4만원)을 발권하고, 도보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숙소 세이칸소(星觀莊) 산장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빗방울은 점차 굵어졌고, 배낭 커버와 비옷을 꺼내 입어야 했다. 오후 5시 30분경 산장에 도착하니 다음 날 새벽 정상을 향한 긴 여정이 비로소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산장이 대부분 국립공원공단에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일본의 산장은 대부분 개인이 소유하고 직접 운영한다. 요시다 루트에는 모두 18개의 산장이 있으며, 세이칸소(星觀莊) 산장은 6합목(해발 2,325m)에 자리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사토미다이 세이칸소(里見平星觀莊)’로,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기 좋은 산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세이칸소는 목조 건물로, 내부는 1·2층으로 이뤄진 1인실과 다인실을 갖추고 있다. 객실은 일본 특유의 다다미를 깐 구조이며, 각자 사용할 수 있는 침낭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산장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숙소를 배정받아 짐을 정리한 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자리에서는 누구 하나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음 날 새벽 산행만큼은 좋은 날씨 속에서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두의 표정에 묻어났다.
식사를 마친 뒤 산장 밖으로 나서자 걱정했던 날씨는 거짓말처럼 맑아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새벽 2시 출발을 앞둔 우리 일행은 하나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저마다 탄성을 터뜨렸다. 평소 함께 산행을 다니는 한 도반은 필자의 산행 닉네임이 ‘신불산 산신령’이라는 것을 빗대어 "오늘은 신불산 산신령이 후지산에 왔으니 후지산 산신령도 감동해서 내일은 틀림없이 좋은 날씨를 내려줄 겁니다"라며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돌이켜 보면 그 말이 꼭 농담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산을 오르내렸지만, 신기하게도 산행 중 폭우를 만나 발걸음을 멈춘 적은 거의 없었다. 우연이라면 우연이겠지만, 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작은 행운도 산이 내려준 선물처럼 느껴진다.
그날 밤 세이칸소는 이름 그대로 ‘별을 바라보는 산장’이었다. 밤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총총히 빛났고, 가느다란 눈썹달이 후지산 능선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정상을 향한 설렘을 품은 채, 후지산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우리 속담에 "먼 길을 갈 때는 눈썹도 빼놓고 가라"는 말이 있다. 먼 길을 떠날 때는 사소한 것 하나도 짐이 될 수 있으니,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후지산 산행만큼은 예외다. 방한복과 우의, 식수, 행동식, 헤드랜턴 등 필수 장비만 챙겨도 배낭의 무게는 15~20㎏에 이른다.
사람마다 체력의 차이는 있지만, 후지산은 결코 동네 뒷산 오르듯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다. 필자 역시 수많은 산을 오르내렸지만, 산을 마주할 때마다 늘 초심자의 마음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후지산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경사가 35도에 가까워지고, 공기 또한 점점 희박해진다. 체력을 적절히 안배하는 것은 물론,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 자신의 몸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계속) 진희영 산악인·기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