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원 UNIST 교수
조재원 UNIST 교수

  여름은 참기가 힘들 게 덥다. 물론 올해 여름도 덥다. 하지만 더움을 맞이하는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인디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풍등’이란 노래를 들은 후부터 여름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 나에게 아련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우리에게 몇 번의 여름이 더”라는 가사를 듣고 끝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출근하는 기차 안에서 얼른 눈물을 훔쳐야 했다. 2023년 가을 어머니가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그해 여름, 어머니에게 여름이 꼭 ‘브로콜리너마저’ 노래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지금 덥기만 한 여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의 모자란 지혜로는' 가름하기 어렵다.

  여름의 어원은 열매가 ‘열린다’에서 온 ‘열음’에서 왔다고 학창 시절 배웠다. 그런가보다 싶었던 의미가 시간이 지나 체험의 언어로 다가온다. 시골 출신이 아니라서 여름의 의미를 몸으로는 모르다가 지리산 한 작은 마을에 나뭇집을 짓고는 조금씩 알아갔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꽤 넓은 마당을 당신의 정원으로 바꾸셨다. 산 중턱 집 마당에는 장정도 들기 힘든 돌들이 한없이 박혀있었다. 그 돌들을 굴려서 이동시켜 한쪽에는 꽃밭을, 다른 한쪽에는 텃밭을 일구셨고, 집 앞으로는 과실나무를 심으셨다. 그리고 온갖 열매와 채소가 수확되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통화하면 몇 마디로 끝났던 안부 인사는 정원의 꽃 얘기, 텃밭 채소 그리고 과실나무의 수확 얘기로 바뀌었다. 그렇게 여름은 늘 수확과 어머니 정원의 꽃 얘기로 채워졌다. 그렇게 나의 삶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여름이 돌아왔다.

  어린 시절을 기억해 보았다. 겨울의 기억은 거의 없었다. 울산, 부산, 통영(당시 충무) 등 부울경에서 이사하며 보낸 어린 시절이라 그런지 겨울의 기억은 나질 않고 추억은 여름이란 계절과 함께한다. 울산의 진하해수욕장과 방어진, 부산의 다대포해수욕장, 통영의 비진도가 추억이란 앨범을 가득 채운다. 여름은 과일 수확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의 수확도 의미하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나의 기억을 채운다. 그곳엔 어머니가 함께 있었다. 여름, 의미, 인생에서 어머니의 존재가 빠지지 않았다. 진리는 늘 늦게 도착한다. 여름날 늦은 오후, 밭일을 마치고 흙에 앉아 아들을 떠올렸을 어머니는 이제 없다는 편지가 너무 늦게 나에게 도착했다. 가수 이효리와 정미조가 함께 부른 ‘엄마의 봄’이 나에게는 ‘엄마의 여름’이었는데, 서툴게 하지만 세상 어떤 가수보다 멋지게 ‘엄마’를 노래해 준 이효리의 그 마음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의 노래는 아주 젊은 어머니를 내게 돌려줬다.

  찬란한 계절은 영원하지 않다. 수확할 수 있는 인생은 짧다. 어머니와의 여름은 그렇게 흘러갔다. 어머니와 함께하지 못하는 여름이 어떨지, 어떠해야 할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이 여름 나의 품에 안긴 손주를 느끼며 버쩍 정신을 차린다. 내가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서가 절대 아니다. 자식과 손주가 수확의 여름을 맞으며 느낄 외로운 슬픔을, 옆에서 다만 서 있으며 응원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여름의 짙디짙은 초록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색이라고 괴테는 말했다. 초록색은 생명의 색이라고 알고 있던 선입관은 괴테에 의해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물론 괴테가 말하면 곧 정답이란 뜻은 아니다. 괴테의 색채 철학을 듣고 나니 정말 그런 듯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곧 죽음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나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여름이란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와 주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이어지는 사랑일 것이라는 희망을 얘기한다. 태어나면서 죽음을 바로 걱정하지 않듯이, 죽음을 보고 생명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연이 자연인 것은, 자연답지 않은 생각을 하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뜨거운 그해 여름은 이런 얘기를 남기고 그렇게 갔다.

  한 여름 이른 새벽 책상 앞에 앉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오늘도 '이 여름이 너에게 남아 있음을 기억해라' 하신다. 조재원 UN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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