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전 울산광역시 감사관
김상곤 전 울산광역시 감사관

노랗게 물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한참을 서서 한 길이 덤불 사이로 굽어지는 곳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시가 더러 있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는 길’은 나이 들수록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훗날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렇게 끝나는 시를 읽고도 마음속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결정하고 선택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그리고 모든 선택은 후회와 미련을 동반한다. 자기의 결정에 대해서는 뒤를 돌아다보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일 경우가 많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선택의 결과로 얻거나 잃어버린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이 들면 이런 저울질을 하면서 시간을 건너가야 한다. 가정법과 상상력이 지배하는 시간이다. 작은 이익과 손해를 측정하는 저울 눈금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평생 경험한 소박한 칭찬이나 비난의 양도 선택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을 안다. 스치듯이 지나간 짧은 명예나 불명예도 마찬가지다.

손꼽아보면 모두 자질구레한 선택으로 연결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말처럼 삶을 결정하는 두 갈래의 길 앞에 섰던 적이 있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작은 선택들이 모여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분명한 인식도 없었다. 그래서 로버트 프로스트가 이 시를 쓴 때가 20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읽을 때마다 자책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천재가 쓴 글은 나이와 시대를 초월한다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가 뚜렷하지 못한 사람 앞에 선택해야 할 두 갈래의 길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길과 저 길의 의미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가 중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젖은 짚단 태우듯 불꽃도 없이 연기만 피우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온전히 시험하는 모험적인 길에 뛰어들지도 못했다. 삶의 범위를 확대하는 위험한 선택을 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노년이 되어서도 자주 떠올리는 말이 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세계 오지를 탐험하면서 젊은 시기를 보낸 여성 여행 작가의 책 제목이다.

노년의 시간에도 마음을 채우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흔들리는 시간에 질서를 세우고 유지하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는 일에도 나름의 목적이 있고 선택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들불처럼 번지는 파크골프장에서 할 수 있는 경험도 이런 종류의 일들이다.

죽기 전까지는 누구도 행복했다고 단정하지 마라. 헤로도투스가 그의 저서 『역사』에서 한 말이다. 그 사람이 마지막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기 전에는 한 사람의 삶을 행복이나 불행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역사의 아버지는 말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의 행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의 선택을 말하고 있다.

기원전 500년에 나온 지혜가 지금까지 빛을 잃지 않고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헤로도투스가 염려한 삶의 끝부분이 그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 시대보다 훨씬 길고 고된 여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평범한 범인의 삶도 끝자락에는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 되는 일이 다반사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과 종교도 어찌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이다. 삶과 죽음의 세계를 두루 이야기하는 목사나 스님의 기도 소리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는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 생명이 끝나야 그들의 영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한 편의 무난한 서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음과 몸의 자유를 잃지 않고 자신의 마지막 자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삶의 끝자락에 필요한 선택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김상곤 전 울산광역시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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