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과 부산·인천·여수광양 등 4대 항만의 보안과 시설관리 기관을 묶는 가칭 ‘한국항만보안시설공단’ 설립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분산된 관리 체계를 일원화해 항만 운영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지만, 지금 추진되는 통합 논의에 앞서 풀어야할 과제가 있다. 현장의 시설 노후화와 기강 해이, 치명적인 장비 공백을 방치한 채 추진하는 외형적 조직 통합은 시너지 대신 ‘안전 부실의 전국적 확산’이라는 부작용만 부를 뿐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강승규 의원(국민의힘)실이 공개한 4개 항만공사 자료에서 드러난 현실은 충격적이다. 특히, 울산항의 실태는 위험 수위를 한참 넘어섰다. 울산항 내 하역 크레인의 91.3%가 사용연수 기준(10년)을 초과한 노후 장비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시설이 낡다 보니 인명 피해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5년간 울산항에서만 사망 1건, 중상 10건, 경상 75건 등 80여 건의 안전사고가 이어졌다. 사망사고는 올해 1분기에 발생했다. 전국 유수의 공업항인 울산항의 장비 노후율 90% 돌파는 노동자들을 매일 잠재적 흉기 아래로 내몰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안 체계의 구멍은 더욱 충격적이다. 국가 중요시설인 울산항만 경비에 필요한 방탄조끼는 단 한 벌도 없었다. 방탄모 보유량은 15개 였다. 총기(시설주 소유 가능장비)만 쥐여준 채 방호 장구도 없이 현장 요원을 경비에 투입해 온 셈이다. 이에 더해 보안 요원의 직장이탈 금지 위반과 성실의무 위반 등 기강 해이 사례마저 잇따랐다. 유사시 국가 기간시설 방어는커녕 근무자의 자체 방호조차 담보할 수 없는 취약한 보안 민낯이다.
이러한 현장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추진하는 조직 통합은 위험천만하다. 낡은 장비 교체 계획과 구체적인 안전 예산 증액, 철저한 복무 점검 없이 몸집만 불린 공단을 출범시킨다면,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는 더 불분명해지고 현장의 목소리는 중앙 집권적 관료주의에 묻힐게 뻔하다.
항만 운영의 시작과 끝은 현장 노동자의 생명과 국가 물류 거점의 보안이다. 조직의 간판을 바꾸는 일보다 시급한 것은 노후 크레인을 전면 교체하고, 기본적 방호 장비 지급과 현장 복무 기강을 바로잡는 일이다. 정부와 각 항만공사는 허울뿐인 통합 논의에 앞서 현장의 안전망부터 촘촘히 보강할 것을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