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집을 떠나 풍광 좋은 곳에서 한 달쯤 살아보는 꿈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는 이미 오래된 관광상품이 되었다. 동남아에도 한 달 살기의 성지가 여럿 있다. 태국을 가보지 않은 사람도 치앙마이에 대한 소문은 다 알고 있을 정도다. 주위에서도 이런 꿈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달 살기 장소가 전 세계로 점점 퍼져 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인간은 편하고 익숙한 환경을 좋아하면서도 이국적인 환경에 대한 동경을 함께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가보지 못한 새로운 장소나 풍경에 대한 설렘은 일상의 따분함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면 새로운 감정과 느낌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낯선 장소가 주는 해방감을 경험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집을 떠난다. 일과 생존 경쟁의 제약에서 벗어난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여행이다. 소셜 미디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여행지 사진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모습과 자세를 드러내려 노력한다.

여행에서 한걸음 진화한 것이 한 달 살아보기라고 생각한다. 열흘을 넘지 않는 여행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속도 경쟁이라 마음이 풍경 속에 머무를 시간이 없다. 현장의 생생함은 우리의 기억이 아니라 카메라 속에 저장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없는 여행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한 달 살기는 카메라 렌즈가 필요 없는 느린 속도의 여행이다. 그래서 한 달 여행이 아니라 한 달 살기라고 이름을 붙인 것 같다.

매년 두세 차례 제주에서 한 달 살이를 하는 친구가 있다. 똑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행동반경을 유지하면서 살다 온다. 주위의 아름다운 길 걷기. 서너 개의 오름 탐방. 주인과 친구가 된 식당 네댓 곳 찾아가기. 한 달 내내 흔한 커피숍 한 번 들리지 않을 정도로 헐벗은 시간을 견디듯이 살다 온다고 했다. 계절마다 풍경이야 바뀌겠지만 이미 익숙해진 공간 속에서 한 달 살이를 반복하는 이유를 선뜻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제주에서 한 달 정도 지내다 보면 울산에서의 익숙한 생활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한 달 살기가 주는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떠난다는 오래된 격언이 다시 떠올랐다.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자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낯설게 보는 능력이라고 한다. 매일 마주하는 거리와 나무 그리고 햇살을 처음 보는 것처럼 경험한다는 것은 범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모든 종교 경전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그날이 그날 같은 정체된 시간 속에서도 매일 새로운 축복을 발견하는 힘을 기르라고 말한다. 생의 마지막 날인 것같이 절박하게 살아야 한다고도 한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머리로는 수긍할 수 있는 일이나 실천에 이르기는 힘들다.

여행이나 한 달 살기는 모두 익숙한 장소에서는 얻지 못하는 경험과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시도하는 도전이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익숙한 장소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그때 만나는 익숙한 것들은 전과 다르게 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모두 한 달 살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풍광 좋은 여행지뿐만 아니라 매일 부대끼며 살아가는 오래된 집도 마찬가지다. 비록 한 달마다 통장의 잔고를 계산하고, 매달 날아드는 카드 요금 청구서를 조심스레 점검하는 걱정 많고 진부한 장소이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할 여행지임은 분명하다.

매일 깨어나는 익숙한 집도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요양원의 노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끝까지 놓지 않고 살아간다고 한다.

집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는 마음속의 장소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항상 낯선 곳으로 떠나는 한 달 살이의 꿈을 버리지 못한다. 또 여기가 바로 그 여행지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진정한 여행자가 되려 노력하기도 한다.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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