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길 주필

2015년 을미년(乙未年) ‘양(羊)의 해’가 밝았다. 사람이 양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약 1만년 전 중앙아시아 고원에서 유목민들의 가축으로 길들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에서도 성서에 맨 처음 등장하는 짐승이 양이다. 그것도 500회 이상 양 이야기가 인용된다. ‘99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맨다’는 얘기부터 예수 자신이 목자(牧者)였으며, 짚고 다닌 지팡이가 바로 양몰이 지팡이였다고 한다.
서양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도 그 양에 관한 문헌코드의 차이였다. 하느님을 목자에 비유하고 그를 섬기는 신자를 양으로 비유했으니 돼지와 소만 길러온 우리나라 농사꾼들이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양(牧羊)이 어색한 우리나라에서 양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는 보통 양과 염소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았다. 미년(未年)에 태어난 사람을 ‘양띠’라고도 하고 ‘염소띠’라고도 한다. 한자로 양(羊)은 면양(綿羊)과 산양(山羊)을 모두 포함해서 해석하는 경우가 있어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엄격하게 면양을 양이라고 하고, 산양을 염소라고 한다. 양과 염소는 수염, 뿔, 머리모양, 털 등 신체적 특징으로 구분된다. 이는 다른 속(屬)이며, 염색체 수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자를 보면 개념있는 말들은 羊들의 차지다. 인간의 대표적인 덕목인 진선미(眞善美)가운데 眞(진)만 빼고는 모두 양과 관련된 글자들이다. 착할 善(선)자 아름다울 美(미) 자에도 羊 자가 들어있다.
송나라 때의 육전(陸佃)은 『비아(埤雅)』라는 책에서 “양은 뿔이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니 인자(仁者)와도 같지 않은가. 잡아도 울지 않고 죽여도 소리치지 않으니 마치 의(義)에 죽는 것과 같지 아니한가. 어린양이 어미 양의 젖을 빨 때는 반드시 무릎을 꿇으니 마치 예를 알고있는 것 처럼 보이는구나.”라 했다. 그래서인지 의로움의 의(義)자에도 희생한다는 희(犧)자에도 羊이라는 문자가 들어있다.
『맹자』에도 “소는 죽음 앞에서 겁을 먹고 허둥대지만 양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다”고 했다.

그래서 양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희생양(犧牲羊)’과 ‘속죄양(贖罪羊)’이다. 속죄의 제물로 바쳐지는 양은 기독교 문화권에서 약한 존재라는 의미로 흔히 인간을 양에 비유하기도 했다. 예수 자신은 온갖 허물과 잘못을 속죄하는 희생양을 칭하기도 했다.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라는 주기도문(主祈禱文)은 이에서 연유된 것이다.
한편 고대 오리엔트 문명이 발상될 때 이미 인민의 지배자가 ‘목동’이라는 말로 형용되었고 기독교 세계에서는 사제를 목자(Pastor)등 양의 관리자라고 했다. 한국과 중국에서도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를 목민관(牧民官)이라 했다.

우리나라에서 면양을 사육 한 것은 고려 때 금나라에서 들어오면서부터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뒤 조정에서는 제사용으로 조선시대까지 양장(羊場)을 설치해 사육했으니 풍토병 등으로 사육이 힘들었다. 면양이 산업용으로 사육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이며, 광복 후에는 사라졌다가 제 3공화국 때 장려됐다. 지금은 대관령 부근의 목장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나 ‘겉은 범, 속은 양’ 등 관련 속담이 있다. 양과 비슷한 염소의 외모를 놓고 고집 센 노인에 비유하기도 한다. ‘염소뿔 세다고 하니까 황소에게 덤빈다’는 속담처럼 어리석고 경망스럽게 보는 부정적인 면도 없지않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이라면 양 한마리를 잃은 주인이 동네 사람들을 모두 동원해 잡으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길이 여러갈래로 갈라져 있으면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학문이나 사물을 헤어릴 때 그 방법이 너무 번잡하고 의미가 복잡하면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망양보뢰(亡羊補牢)’는 양이 달아난 뒤 울을 고친다는 뜻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과 같다. ‘망양지탄(亡羊之歎)’은 도망간 양을 쫓는데 갈림길이 많아서 찾지 못하고 탄식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다방면이어서 진리를 깨닫기가 어려움을 한탄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양두구욕’이라면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과 속이 다름을 말한다.

고려 말, 이성계가 꿈을 꾸었는데 양을 잡으려고 하자 양의 뿔과 꼬리가 빠져 놓치고 말았다. 괴이한 생각이 들어 무학대사를 찾아가 꿈 이야기를 하자 무학대사가 무릎을 치면서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즉 ‘양(羊)’에서 뿔과 꼬리에 해당하는 획을 떼어내면 ‘王’자가 남으니 곧 임금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후 양 꿈은 길몽이 되었다.
십이지(十二支)에서 양(羊)은 미(未)로 표기되며 여덟 번째의 동물로 나타난다. 양이 열 두 동물 속에 끼어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게 된 것은 양의 특성 때문이다. 양 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온순하고 고지식하고 희생정신이 투철하다고 한다.

두 마리의 양이 외나무다리에서 서로 비켜주지 않고 두 마리 모두 물에 빠진다는 이솝우화의 양 이야기가 있다. 이를 두고 양띠는 ‘고집이 세다’ ‘고지식 하다’고 말한다.
양과 염소는 반드시 갔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이 있다. 그래서 속담에 ‘염소띠는 부자라 못된다’고 하는데 너무 정직하여 부정을 못 보고, 너무 맑아서 부자가 못된다는 얘기다.
양띠 해는 을미(乙未·푸른 양) 정미(丁未·붉은 양) 기미(己未·노란 양) 신미(辛未·흰 양) 계미(癸未·검은 양) 등 육십갑자에서 순행한다. 여덟 번째 동물로서 시각으로는 오후 1시에서 3시, 달(月)로는 6월에 해당하는 시간신이며, 방향으로는 남남서를 지키는 방위신이다. ‘未’는 땅을 의미하기도 한다. 을미년에서 ‘乙’은 을목(乙木)을 뜻한다. 갑오년(甲午年)의 갑목(甲木)이 대들보용 큰 나무를 뜻하는 데 비해 을목은 연하고 부드럽고 작은 나무를 뜻한다. 즉 사람들에게 먹을 양식과 기쁨을 주는 초목이다.

2014년 갑오(甲午)는 주역의 괘상이 천산돈(天山遯)이 중상근(重上根)으로 육충괘가 되어 나라가 온통 시끄럽고 어지러웠다. 을미년은 주역의 괘상으로 보면 천산돈이 변하여 중풍손(重風巽)이 되었다. 주역으로 볼 때 갑오년 보다 오히려 다툼이 더 많아서 세상이 시끄럽고 어지러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 미리 대비하여야 할 정치인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갈등만 일으키면 원성이 높아질 것이다.
다행이 을미년 농사는 풍작이 예상된다. 하지만 재물과 재물이 서로 충돌하여 파괴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니 나라의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아 민생경제가 어려워지고 시민의 생활이 활력을 잃을 것으로 보여 각자가 삶을 잘 챙겨야 한다.

위기가 부닥치면 자신을 책망하기보다 타인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경향이 강하다. 지난 한 해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유난히 많았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희생양으로 지목해 국민적 공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 역시 여러번 있었다. 희생양을 향한 비난과 폭력은 분노를 가라 앉히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는 없다. 양의 해, 화해와 융합의 정신으로 충돌을 극복하고 새해엔 ‘희생양’을 악용하는 일이 없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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