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문화원연합회, ‘울산지역문화연구’ 발표
‘해산물 채취하는 사람’ 지칭 경북방언
구·군별 머구리 삶·역사 조명
일제강점기·해방 전후 왕성한 활동
60~70년대 잠수부로 수중건설 참가
산업화 되면서 자취 감춰…현재 0명

‘머구리’는 ‘해산물을 따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경북 방언이다.
청정해역 동해안을 끼고 있는 울산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머구리 작업이 활발했다. 어자원이 풍부해 남해안 머구리들까지 와서 활동을 했고, 반면 울산 머구리들은 포항과 속초 심지어 울릉도에 가서도 작업을 했다.
울산 내에서도 어자원이 풍부했던 어촌과 그렇지 못한 어촌이 서로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울산에 공장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머구리들의 활동도 줄어들었고,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울산광역시문화원연합회는 지난한해 이러한 울산머구리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고 조사결과를 담아 울산향토사 통합연구지 제5호 ‘울산지역문화연구-울산의 옛머구리들’에서 특집으로 실었다.
울산의 옛머구리 조사에는 이석호 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실장, 장세동 동구문화원 문화자문역, 박중훈 북구문화원 이사,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가 각 지역을 담당하며 참여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1960~1970년대 불어 닥친 건설 붐과 잠수부들의 해외 파견은 머구리들의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울산에서 머구리 활동을 하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수중 건설의 기술자로 방파제와 다리공사, 원전 건설 현장 등으로 갔고 중동으로까지 파견돼 많은 일을 했다. 산소통을 차고 바다 밑에서 일한 이들은 대부분 육지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3~4배에 달하는 임금을 받았을 정도로 수입이 좋았다. 현대가 금강산 개발을 위해 북한에서 장전항을 만들 때 참가하기도 했다.
남구 머구리 활동의 본거지는 장생포에서 세죽마을까지 이어졌으며, 공단과 항만의 확장으로 조업할 공간은 차츰 줄어 머구리들은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동구의 경우 1970년 전후 마을 청년들이 군에서 재대해 돌아와 머구리배를 타거나 머구리가 되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동해안의 어족자원이 풍부해 돈벌이가 좋았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현대조선소를 건설 할 때 해저에서 다양한 작업을 담당했다.
북구에서는 강동지역 해안근처 비교적 얕은 수심에서 머구리 작업이 이뤄졌는데 남구 세죽마을 출신 이복근씨가 강동동에서 작업을 시작해 수확량이 좋자, 많은 사람들이 따라 조업을 했다고 한다. 울주군의 경우 진하항에 머구리들이 많았다.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하다 보니 온산의 많은 해녀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현재 울산에는 머구리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한명도 없다. 그리고 과거 머구리 작업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타계했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어려운 일을 하다 보니 머구리 작업에 대해 남은 기록은 물론이고, 사용했던 장비조차 모두 사라졌다.
울산시문화원연합회의 이번 연구조사활동은 울산 머구리들의 삶과 과거 울산에서 있었던 근해어업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