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논설실장
김진영 논설실장

   극한 호우라는 이상 기후가 올여름 한반도를 덮쳤다. 불시에 쏟아지는 장대비에 비를 피하면 엄청난 굉음과 불도장이 하늘에서 땅으로 쩍쩍 야단을 친다. 아침에 말짱했던 하늘은 오후가 되면 거짓으로 돌변한다. 예보를 해야 하는 기상당국도 곤혹스럽다. 하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상은 궂은날보다 더 요란하다. 후쿠시마에 머리띠를 조여 맨 이들이 이번에는 대통령 처가 땅 의혹으로 삿대질이다. 국회에서 삿대질하면 사대문 안으로 전국의 관련 인파가 모여들고 여기저기서 물러가고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목청을 돋운다. 

 지난 주말 광화문 쪽 박물관에 근무하는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지하철 타던 시절 말고는 출근 전쟁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는데 요즘은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 주말 파엘 그로시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서울에 오자 외교부 건너편에 자리한 박물관 앞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진을 쳤다. 박물관은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특성상 시위대와 관람객의 동선이 겹쳐 진땀을 흘렸다는 이야기였다. 편안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야전 같은 환경이 낯설었던 친구의 푸념이었지만 주말마다 시위대와 관광객이 뒤섞인 서울의 풍경은 대한민국 사회상의 현주소로 읽힌다. 

 이 혼란의 한가운데 자리한 21세기의 도깨비방망이가 모바일과 인터넷 플랫폼이다. 소통과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휘젓고 있는 온라인상의 각종 플랫폼은 어느 순간부터 괴물이 됐다. 누군가 플랫폼을 두고 ‘사이코패스를 위장하려는 관종들과 첨단 기술의 결합체’라고 비꼬았다. 출시 일주일도 안 돼 가입자 5억 명의 대박이 난 저커버그의 신기술에 골이 난 머스크가 비아냥대자 말싸움이 기 싸움으로 번져 주짓수 대결로 이어지는 헤프닝이 이제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문제는 이들의 말장난까지 고스란히 생중계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점이다. 

 휴대폰을 버리거나 데스크탑을 깨부수지 않는 한 속절없이 세상의 모든 관종들과 매일 만나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신이 난 관종들은 매일같이 새로운 이슈를 만들고 분칠해 말간 모습으로 세상에 선보인다.

 정치권에서는 바로 이 SNS가 모든 이슈의 출발점이다. 지금 후쿠시마보다 더 뜨겁게 대한민국 이슈로 부상한 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도 그렇다. 시작은 이해찬 민주당 고문이다. 이 고문은 지난달 16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당원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처가가 땅 투기를 해 놓은 곳으로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 노선을 변경, 처가가 부당한 이득을 취득하게 했다’는 취지로 발언했고, 이후 다수 유튜브 채널에서 해당 발언을 확대 재생산했다. 이슈의 무게가 물건이 된다고 생각한 김두관 의원이 이 건을 이어받았다. 김 의원은 작심하고 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쟁점화했다. 엄청난 비리를 포착한 듯 비장하게 시작한 민주당의 작품은 ‘윤석열 탄핵’까지 거론하는 묵직한 이슈가 된 듯했다. 의혹 제기를 주도한 김두관 의원 측은 탄핵은 민주당과 무관하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마이크를 잡은 이들이 누구인가. 윤 정부 비리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국회를 찾았던 민주당의 오래된 동지들이었다.  

 상기된 표정의 이들은 양평 고속도로 원안에서 변경된 분기점 부근에 김건희 여사 땅이 있고 이 땅값을 올리기 위한 특혜가 노선변경이라는 골자의 주장을 폈다. 한마디로 최순실급 국정농단이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일까. 계속해서 쏟아지는 양평 관련 괴담은 여전히 미확인 상태다. 언론도 좌우로 확실한 입장을 정한듯하다. 좌쪽에 선 언론은 양평 고속도로 분기점의 그림에 김건희 여사 쪽 땅을 그려 넣어 특혜가 맞다고 페인트 칠을 했고 우쪽의 언론은 양평 고속도로 사업의 원안 노선 인근에 민주당 소속 전 양평군수가 땅을 무더기로 매입했고, 주변으로 전임 문재인 정부 인사들인 전 국무총리와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땅이 있다고 연막을 쳤다. 

 팩트체크를 해야 할 언론마저 좌우로 갈리다 보니 특혜 의혹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좌우지간 정치판의 멱살잡이로 번질 조짐이다. 우리 정치가 딱 그 수준이다. 앞뒤 따지지 않고 ‘탄핵’ 운운하는 자들부터 무조건 ‘가짜뉴스’라고 창을 닫아버리는 것은 세월호부터 이태원까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노선변경을 보고한 용역업체에서 튀어나왔다. 특혜라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대안 노선(강상면 종점)이 문재인 정부가 선정한 민간 업체에서 타당성 조사를 벌여 제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토교통부가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해 1월 서울~양평 고속도로 타당성 조사를 추진하면서 2021년 4월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원안을 비롯해 복수의 노선 검토를 시작했고, 지난해 3월 설계 전문 업체인 동해종합기술공사와 경동엔지니어링에 노선 검토를 맡겼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용역업체 측은 ‘정치적 고려 같은 것은 모른다. 기술자의 시각으로 판단했고, 외압 같은 것은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좌우 멱살잡이에 전 정부 인사들의 투기까지 범벅이 된 양평 사건은 선을 긋기 전에 삿대질로 갈팡질팡이다. 여기에 주무장관의 혈기 왕성한 돌직구가 갈등을 더 부추겼다. 틈만 나면 가짜뉴스로 포장하는 야당의 입에서 곡소리가 나게 할 요량인지 몰라도 탄핵만큼이나 너무 나갔다. 애꿎은 양평 주민들이 항의 시위로 바빠졌지만, 그냥 들러리다. 후쿠시마부터 시작된 야당의 하투(夏鬪)에 그저 인테리어 정도로 생각하는 게 정치권이다. 문제는 이런 요란한 사정들을 국민이 먼저 눈치를 챈다는 사실이다. 더 세고 더 강한 이슈가 터져 나와야 하는데 마땅한 소재가 없으니 무리수가 나온다. 누가 어떤 땅을 가졌는지 돌아볼 틈이 없다. 공격의 빌미만 찾으면 쏘아대고 볼 일이다. 그래서 이번 여름 하늘도 요란한 소리로 우리를 꾸짖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진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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