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 전쟁이 한국 경제와 산업 전체에 던진 숙제는 너무나 명확하다. 반도체・철강・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제조업을 국가 경제의 중추로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막상 핵심 에너지는 중동 등 일부 국가에 의존하는 ‘최저가’ 중심의 경제구조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앞으로는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 전반에 안정적인 에너지와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안보(安保) 비용’이 추가될 것이며, 우리 산업이 새로운 생존 전략을 짜야 할 시점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원유 의존도가 가장 높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량은 약 9억 3500만 배럴이었다. 당연히 지리적 근접성과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중동산 원유를 주로 사용해 왔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대중동 원유 수입 비중은 70%에 달했다. 높은 의존도에다가 수입선까지 중동에 쏠려 있다 보니, 지정학적 리스크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던 셈이다. 이런 구조는 경제성에 기반한 측면이 클 수밖에 없다. 중동은 지리적으로 가까워 운송비용 절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란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수급 위기는 이런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실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원유뿐 아니라 나프타 수급까지 흔들리면서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높아졌다. 나프타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다시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포장재 등 산업 전반의 비용 부담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국가 에너지믹스에도 안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순수한 안보 관점에서 에너지원 비율을 검토하자. 먼저, 원전을 보다 적극 활용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원전의 원료인 우라늄은 최소 1년치를 미리 확보해 두는 데다, 지역별 쏠림도 적어 수급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낮다. 앞으로 지어질 신형 대형원전이나 소형모듈원전(SMR)은 출력 조절이 용이해, 기저 전원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실제 정부도 이란 전쟁 이후 LNG 가격이 급등하자, 원전 정비 일정을 조정해 원전 이용률을 높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석탄 발전의 가치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석탄 발전은 전력망에서 꾸준히 퇴출되는 중이었다. 석탄 발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39%에서 지난해에는 29%까지 줄었다. 이렇게 퇴물 취급받던 석탄이 이번에는 전력망을 구했다. LNG 발전 못지않게 출력 조절을 쉽게 할 수 있는 데다가, 석탄은 지구 곳곳에서 채굴돼 지정학적 리스크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유럽 국가도 LNG 가격이 오를 때마다 석탄 발전을 활용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2040년 이후 석탄 발전을 최소한으로 활용하면서, 햇빛이나 바람이 장기간 사라지는 비상 상황이 올 때는 비상 전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젠 공급망 안정성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반영한 ‘안보 비용’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조달 전략을 재설계해야 한다. 미국 등 동맹국을 포함한 비중동 지역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에너지를 산업・안보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미 국내 핵심 산업인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업 등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와 경제 안보 협력 차원에서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현재의 국내 석유 설비투자는 전부 중동산 중질유에 맞춰져 있다 보니, 미국산 등 다른 지역의 경질유를 쓰려면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한꺼번에 중동산 비율을 낮추기는 어렵다. 그러나 향후 산업 경쟁력을 고려했을 때 정유 비용을 일부 더 부담하더라도,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50%대까지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적 득실(得失) 관계를 떠나,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같은 가스전 개발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좋겠다. 국내 대륙붕 개발이 성공하면, 약 2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가스 비축기지를 확보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에너지 수입원을 다양화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직접 해외 자원 개발을 추진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이동구 울산대학교 초빙교수·한국화학연구원 명예연구원·디지털혁신 U포럼 위원장·공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