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화양계곡에 송시열 제자들이 새겨 넣은 ‘萬折必東(만절필동)’. ‘죽어도 중국을 섬기겠다’는 뜻의 선조 글씨다.
충북 화양계곡에 송시열 제자들이 새겨 넣은 ‘萬折必東(만절필동)’. ‘죽어도 중국을 섬기겠다’는 뜻의 선조 글씨다.

 

이성계의 조선은 영(榮)보다 욕(辱)이 많은 역사를 썼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독도, 대마도 영토 확정과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격퇴 역사 이외는 거의 600여년간 중화(中華)사상에 짓눌려 사는 치욕적인 만절필동(萬折必東)의 역사를 썼다. 

 중화사상은 한족(漢族)이 그들의 문화를 세계 으뜸이라며 자랑스러워하는 사상이지만 사실상 화이사상(華夷思想)이다. 즉 중국 주변 민족은 이적(夷狄)이라 하면서 천시하는 사상이다.

 「萬折必東」은 중국 순자 유좌편에서 등장하는 사자성어로서 「황하는 아무리 굽이가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들어간다」라는 뜻이지만,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그런데 조선에서 만절필동은 ‘중국에 복종’한다는 화이(華夷)적인 정치 이념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해금(海禁)이다. 조선은 명(明)의 해금 정책을 만절필동 해 모든 백성에게 해양(해외) 진출을 금지한 것이다. 19세기 초 당시 영국, 러시아, 독일, 네덜란드, 미국, 일본 등 국가다운 국가들은 모두 해양 진출로서 근대화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조선은 중국의 만절필동만을 따랐다. 선조(임금)는 아예 명(明)나라를 섬기겠다는 뜻으로 이 사자성어를 남겼다(사진 참조).  

 조선 중엽 거물 정치인 송시열(1607~1689)은 대표적인 친명(親明) 만절필동 주의자였다. 일상생활에서도 명나라 예법을 따랐다. 그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도움을 어버이 같은 것이었다고 인식했다. 

 1689년 송시열이 죽자, 제자들은 이곳에 그를 기리는 서원을 세우고 ‘화양(華陽)서원’이라고 이름했다. 「화양(華陽)」은 중국 문화가 햇빛처럼 빛난다는 뜻이다. 송시열의 제자들은 마침내 명나라 황제 신종을 제사 지내기 위한 사당을 짓고 ‘만동묘(萬東廟)’라고 명명했다. 만동(萬東)은 ‘만절필동(萬折必東)’의 준말이다. 이후 만절필동 영향이 오늘 대한민국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萬折必東! 오늘날 이 사자성어가 새삼 주목받는 것은 지난 2017년 12월 5일 노영민 당시 주중대사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 때 방명록에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썼기 때문이다. 

 노영민 대사는 그 밑에 한글로 "지금까지의 어려움을 뒤로 하고, 한·중 관계의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기를 희망합니다"라고 써놓았지만 이 사자성어를 노영민 대사가 쓴 것은 만절필동 정치를 하겠다는 의도로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 끝없이 제기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21C 오늘도 「중국이 제일이다」라는 화이사상(華夷思想)을 고수하며 오만한 만절필동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일본도 신국(神國), 신론(新論)하며 우쭐하는 역사를 쓴 바 있지만 그들은 중화·만절필동 사상을 중화망대(中華妄大)라 비웃으며 대응했다. 

 각설하고 조선의 인조(仁祖 1595년11월27일 ~ 1649년 6월 7일) 왕은 병자호란 때 청에 반항하다가 삼전도(三田渡·지금의 서울 송파구)에 가서 천태종에 항복했다. 승정원 일기는 그때의 항복 모습을 이렇게 전한다. "인조 왕은 천태종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 머리를 팍팍 부딪치는 처절한 굴복을 했다…" 이것이 이른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삼전도 치욕이다.  

 승정원일기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황제(천태종)가 일어나 단을 내려가 오줌을 누었으므로 주상(인조를 가리킴) 또한 일어나 단을 내려가 동쪽 모퉁이를 나가서 휴식했다."

 1880년경 청나라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조선에게 일본과 조약을 맺도록 했다. 당시 조선에 침략한 일본은 러시아보다 더 강한 존재로 급변해 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청나라는 미국을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고 전통적인 '韓·종속'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자 꾀했던 것이다. 

 당시 청나라 조선 총독 위안스카이(袁世凱)는 참으로 교활한 자였다. 교섭의 발의와 초안은 그가 모두 심의하고 절충을 주관하면서 한·미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의 최종 단계에 조선 대표로 신헌과 김홍집을 참석시켜, 조약문에 허수아비 조인을 하도록 했다.   

 역사는 흘러 오늘날 한국은 과거와 차원이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 그런데도 중국은 여전히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그 옛날 중화·만절필동 관계로 고착시키려 들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특사를 중국 지방 장관이 앉는 자리에 앉히기도 하고, 시진핑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하고, 주한 중국 대사는 부국장급 정도의 하급 관리만 보내고 있다. 모두 한국을 깔보는 계산된 행동이다. 마침내 하급 중국 대사가 기자들 앞에서 "한국이 중국에 베팅(betting)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오만방자한 말을 했다.  

 중국은 수천 년간 한반도에 숙명 국가다. 중국으로부터의 피해나 수모는 전쟁 못지않게 고통스러웠다. ‘처녀들을 바쳐라’ ‘금·은을 바쳐라’ ‘말(馬)을 바쳐라’는 등 조공 요구가 끝이 없었다. 아! 조선은 이 가혹한 조공을 피하고자 '萬折必東'을 읊어댔고 '三拜九叩頭禮' 자세를 취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방중(訪中)기간 중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에 비유하고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진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그 꿈을 함께 (중국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의전 푸대접, 혼밥, 기자폭행 등 모욕적인 방중(訪中)천대 의혹이 공공연하게 꼬리 무는 가운데 이뤄진 연설이었음에도 문재인 대통령 연설은 시종일관 ‘만절필동(萬折必東)’,고백 다름이 아니었다. 아!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 대학생들 앞에서 저런 비굴한 모습을 취하다니! 조선의 인조 왕의 치욕적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가 거듭 회상된다. 김동수 관세사·경영학 박사·울산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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