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자극 강도를 역치라고 한다. 악취의 역치라 하면 후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악취 물질의 최소 농도를 가리킨다. 감각뿐만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감정에도 역치가 있다. 성정이 느긋한 사람일수록 역치가 높아서 외부의 부정적인 상황에 영향을 받는 속도가 느리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역치가 낮아져서 작은 일에도 감정의 굴곡을 느끼며 힘들어한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고 말한다.
개인의 감정에 반응을 일으키는 역치가 있듯이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공동체의 집단심리에도 부정적인 자극에 대한 역치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반응이나 대응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국가나 민족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되면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 지구상에서 계속되는 참담한 전쟁도 국가 간의 자존심 싸움이라는 의심이 들 때가 많다.
국가나 민족과 같은 거대한 공동체뿐만 아니라 일개 기업이라도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쿠팡 사태도 우리나라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면서 시작되었다. 국내 소비자들의 선호도에 의지하여 미국 기업인 쿠팡이 대한민국의 국가적 질서를 흔들려고 시도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입은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국내법의 조치를 미국 법으로 방어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사법적 판단에 영향을 주기 위해 미국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한다고도 한다. 국민적 정서를 자극하는 행동이 역치를 넘어선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를 압박하라고 미국 정부와 정치인을 부추기는 기업의 대표가 미국 국적의 동포라고 하니 더욱 참담한 생각이 든다.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유명 커피 브랜드 사태도 마찬가지다. 어설픈 기업광고로 아물어 가는 상처를 다시 건드린 것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보장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의견이 될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지나간 과거사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비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분명히 존재한다. 공동체가 합의한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가 겪은 역사적 비극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건강한 공동체 구성원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헌법과 법률뿐만이 아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의 공감 능력도 민주주의를 지키는 안전판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공동체는 권위나 자존 같은 상징적 가치를 존립의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이러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폭력도 불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특히 군사적 힘을 가진 강대국들의 이름에는 잠재적 폭력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러시아나 미국과 같은 군사적 대국에서 느껴지는 폭력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군사적 힘이 모든 가치를 지배하는 시대에 타당한 명분 없이 다른 국가나 민족을 자극하는 일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특히 다른 나라의 정치 체제를 타도의 대상으로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것은 위험한 일임이 틀림없다.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다. 그러나 그 개인이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의미가 달라진다. 단순한 개인의 표현이 아니라 집단의 성향을 나타낸다고 오해받기 때문이다.
개인의 의견을 SNS에 남기는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존재성을 확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다른 집단이나 개인의 의견을 거부하지 않고 동등한 가치로 인정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