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일본 고교야구의 대축제인 고시엔에서 한국계 교토국제고가 기적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의 피날레 뒤에 NHK 전파를 타고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퍼졌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수천년 동북아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흐르는 이 교가에 일본이 흥분하고 있다. 기적의 우승을 이뤄낸 교토국제고는 지난 1947년 재일교포들이 세운 재일동포 2세를 위한 학교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운영난을 겪은 이 학교는 지난 2004년 일본 교육법의 적용을 받는 학교로 전환돼 ‘한일 연합’ 형태의 학교로 유지되고 있다. 학생 수는 일본 국적 학생들이 60% 이상이고, 야구부원은 한국 국적 3명을 빼면 대부분이 일본 국적이다.
문제는 이 학교의 우리말 교가에 등장하는 야마토다.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 우리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야마토는 일본인이 스스로를 부르는 민족 정체성을 담은 이름이다. 여기에는 한반도와 고대 일본의 관계를 알려주는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의 코드는 바로 고대 한반도인들이 일본 열도에 들어가 나라를 세운 이야기다.
주인공은 지금의 경북 고령 일대에 근거를 둔 ‘미오야마나’인들이다. 이들은 기원후 42년에 북방에서 남하한 기마군단에게 자신들의 거점을 빼앗기자 지배층의 한 무리가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 열도로 흘러갔다. 그들이 새 정착지로 정한 곳이 바로 야마토다. 미오야마나가 야마토로 변한 스토리다.
이같은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모른채 일부 학자들은 한자를 잘못 풀이해 지금도 여러 가설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몇해 전으로 기억한다. 구글의 지도 서비스에 울산 태화강의 영문 이름을 일본어인 ‘야마토 리버’로 표기한 적이 있다. 울산시가 공식 항의하고 수정을 요구한 이 사건으로 야마토란 이름이 한 때 울산 사람들에게 이슈가 됐다. 야마토는 일본 가나가와 현의 중부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이 도시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 대화(大和)인데 ‘태화강(太和江)’의 태화를 ‘대화’로 잘못 보고 번역한 오류였다. 그런데도 일본의 일부 극우학자들은 울산의 태화강과 기록으로 전하는 태화사까지 대화(大和)의 잘못된 표기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임나일본부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한반도 삼남 아래는 자신들의 옛 영토라는 ‘일뽕’에 도취된 자들이다.
지난 주말 일본 땅에서 울려 퍼진 ‘동해바다 건너 야마토 땅’이라는 지명은 울산과는 관련 없는 지명이지만 한편으로는 먼 옛날부터 왜와 한반도 남쪽은 빈번한 교류가 있어 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점에서 전혀 무의미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래전 필자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을 둘러봤다. 한 때 도쿄제국박물관으로 칭하던 이곳은 다양한 일본 예술품은 물론 동양의 고고학적 유물이나 약탈 문화재도 상당부분 전시돼 있다. 물론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를 통해 약탈했던 무수한 조선의 유물이나 서적은 대부분 지하보관소 등에 분산돼 보관하고 있어 그 규모를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드러나 있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바로 이 도쿄 국립박물관에 우리의 문화유산이 무려 6,751점이 보관돼 있다. 국회도서관 6,748점, 궁내청 4,678점, 교토 오타니 대학 5,605점 등 일본 전역에 한국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일본 땅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합하면 모두 6만1,409점에 이른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10만7,857점) 중 60%가 일본에 있다. 그 유물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일제는 조선강제병합을 이뤄내자 곧바로 한반도 곳곳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 전기회사 지점과 출장소를 두고 신라와 가야의 왕릉을 뒤졌다. 총독부가 주도하면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는 교묘한 배후 숨기기로 왜의 장삿치나 대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뒷배가 든든한 도굴꾼들은 백주 대낮에 왕릉을 파헤치고 삼남의 고대사에 삽질을 자행했다. 총독부의 묵인과 방조는 도굴꾼들에게 날개를 달아줬고 해가 갈수록 그 양상은 무슨 국가적 사업인양 합법화됐다. 그런 도굴의 역사는 일제가 항복을 선언한 직후 현해탄을 건넜고 그 흔적이 박물관 등지에 남아 있다.
약탈의 시대에 일제는 비교적 김해 일대의 가야고분 도굴에 집중했다. 임나일본부를 끼워맞추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었다. 당시에도 울산은 주목할 고대사의 비밀이 여럿 있었지만 ‘임나일본부’에 끼워맞출 유물이 없어 제척됐다. 그렇게 내버려둔 울산에서 1990년대 이후 고대사의 비밀을 풀 타임캡슐이 열렸다. 신암과 서생 해안에서 나온 석기시대 유물과 웅촌 검단리와 삼남 신화리, 남구 옥현 일대에서 환호유적과 벼농사의 증좌, 석기제조 공장급의 집단 유적이 쏟아졌다.
이 가운데 황성동 세죽유적지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묻혀 있었다. 조개류와 동물뼈, 도토리 저장공, 반구대암각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화살촉 박힌 고래뼈가 세상에 나왔다. 여기에 더 놀라운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한반도에 등장하는 흑요석이 나온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흑요석은 용암이 급속하게 굳어지면서 만들어지는 암석이다. 흑요석 돌날의 경우 현대 과학기술로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얇고도 날카롭다. 분석결과 울산에서 출토된 흑요석은 일본이 원산지였다.
고대사부터 왜가 문명을 익혀 국가로 거듭날 때까지 한반도의 도래인은 왜의 문화적 뿌리로 자리했다. 그렇다고 지금의 일본 역시 한반도의 은혜를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지진이 올 것이라는 공포감 속에서도 8월 상반기에만 140만명이 일본으로 관광을 가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다. 일본의 젊은이들도 한국문화에 빠져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음식 맛집투어를 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 정치권이나 일의 우익들은 여전히 친일청산, 혐한을 외치며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다. 딱한 현실이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