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에서 노숙인은 '거리 위 노숙인'과 '자활 노숙인' 두 부류로 나뉜다. 전자는 울산 지자체는 물론 정부조차 명확한 수를 파악하지 못해 말 그대로 유령시민이다. 후자는 자활 의지를 가지고 시설에 입소한 사람이다. 후자의 경우 울산 유일의 시설에 보호 받고 있지만 이미 정원을 넘어섰다.
행정당국은 이들을 두고 사회적 약자 보호 의무와 인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엄연히 도움이 필요하지만, 인권 문제 때문에 어떠한 권유도 강제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설 예비특보가 내려진 18일 울산 남구의 한 다중이용시설 대합실. 막바지 꽃샘추위로 냉기가 도는 이곳 벤치에 백팩 가방 두 개와 갖가지 봉투를 곁에 놔둔 한 남성을 만났다.
이 남성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는데, 500㎖ 생수를 마시다 얼굴을 감싸며 생각에 잠기길 반복했다. 본지 기자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봤지만 아무런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그의 대답은 묵묵부답이다.
중구의 한 다리 밑에선 누군가 가져다 둔 의자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여성을 만났다. 이 여성은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 등 돌려 앉아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떠난 자리엔 보온병과 휴지가, 다리 밑 구석엔 얇은 이불이 담긴 유모차가 있었다.
이들은 울산에서 '유령시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자활 노숙인을 제외한 '거리 위 노숙인'의 수는 울산시와 자활센터 등이 직접 발굴해 집계하는데, 파악된 수는 현재 10명 정도다. 하지만 신고·등록 방식이 아니라 정확한 집계는 아니라는 행정당국의 설명이다. 심지어 경계가 심한 탓에 주거지가 노출되면 잠적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해 관할 지자체는 물론, 정부조차 명확한 통계를 알 수 없다.
파악된 이들의 주 거주지는 △남구 다중이용시설 인근 공원 △중구 T교량 밑 △북구 철교 밑 △울주군 S공공사업소 밑 등이다. 모두 급격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야외 환경으로, 이들이 생활하는 곳 중 80%가 폭력 등의 범죄가 일어난 전적이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중구 원도심에서 급성 당뇨로 쓰러진 노숙인이 신고되기도 했는데, 이 노숙인은 발가락이 괴사돼 절단 수술을 받기도 했다. 갖가지 위험 피해에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의 사회적 복귀를 위해 시설로 이끄는 등의 '강제적인 도움'은 이들의 인권 문제에 가로막혀 사실상 불가능하다. 표현의 자유가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기본 권리 때문인데, 거리 위 노숙인들은 시설의 규칙적인 생활에 거부감을 느껴 "밖이 편하다"며 스스로 거리를 전전한다.
자활시설로 이끄는 방법은 '아웃리치' 방법이 유일하다. 행정과 봉사자가 노숙인이 있을 곳을 물색하고, 물과 방한용품 등 필요한 것을 지원하며 기관으로 유도하는 방법이다.
현재 울산지역에서 노숙인 자립 기관은 '울산노숙인자활지원센터' 한 곳이다. 이들의 하루는 오전 5시30분부터 시작한다. 이곳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기상 후 청소, 아침·점심·저녁 시간, 취침 전 점호와 같은 정해진 타임 스케줄이 있다. 음주는 불가하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러한 생활에 갑갑함을 느껴 퇴소율도 20~30% 수준으로 높다. 입소자가 들어왔다 나갔다 반복하는 경우도 다수다.
한 시설 사회복지사는 "봉사하러 갈 때마다 마주치는 거리 위 노숙인들은 아무리 호소해도 자활센터 입소를 꺼린다. 기본 10년 동안 입소를 하지 않는 분도 있다"며 "아웃리치로 발굴된 분들 외에 정확히 어디에 추가로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들의 사회적 안전에 노심초사하는 것도 사실이다. 퇴소율도 꽤 있는데, 밖이 편하다며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 모든 것을 강제할 근거는 없는데, 안타까운 현실이다"고 설명했다.

행정은 노숙인을 사회적 약자 보호 의무와 그들의 인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노숙인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노숙인법)' 제정 이후 5년마다 노숙인 복지 종합계획을 세우고 있다. 1차(2016년~2020년)에 이어 2차(2021년~2025년)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는 2차 종합계획의 마지막 해인데, 실태조사부터 제대로 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인권이라는 강력한 권리 앞에 △거리현장지원 △의료보건지원 △주거지원 △복지서비스 지원 △인프라 구축 5가지 방향이 현장과 행정정책이 엇박자가 나온다는 이유다. 노숙인법에 규정된 노숙인은 거리노숙인과 시설노숙인 외에 '비적정 주거 노숙인'도 있다. 쉽게 말해 쪽방촌에 거주하는 노숙인들인데, 이들의 경우 해결책은 물론, 구분이 모호해 실태조사도 어렵다.
이러한 사정을 인지하고 있는 울산시는 올해 노숙인이 포함된 신규 복지 정책을 '근로 시 급여 인상'으로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지급되던 자활 급여를 올해 3.7% 인상하고 자활성공지원금을 최대 150만원까지 지원하는 정책이다. 세부적으로 △시장진입형/복지·자활도우미 6만1,930원→6만4,220원 △사회복지시설 도우미/사회서비스형 5만4,200원→5만6,210원 △근로유지형 3만1,800원→3만2,980원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기온이 너무 떨어졌다 하면 발굴된 거리 위 노숙인들을 찾아가는데, 그분들은 말을 거는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일부는 욕을 하면서 가라고 하기도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분들을 강제로 시설을 입소시키거나, 자활 교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이들의 인권 탓에 강제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이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그분들을 만나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고, 추가적으로 거리 위 노숙인들을 발굴하는 것이 최선이다"고 설명했다.
김귀임 기자 kiu2665@iusm.co.kr
